나는 친일파였다?   

2008. 4. 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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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무심코 올블로그에서 내 이름을 친 다음 검색을 해 보니, 이상한 글들이 목록에 떴다. "어? 이게 뭐지?" 오늘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됐는데 4776명에 나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포함된 모양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4776명의 명단에서 내 이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 보기로 했다.

CTRL+F를 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만, 무수히 많은 이름을 하나씩 보면서 내 이름을 찾아보기로 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도 친일파, 태극기를 만들었다던 박영효도 친일파였다. 우리의 국가와 국기가 이제 친일파로 공인된 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니! 참 씁쓸했다. 그렇게 내 이름을 찾다가 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친일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의원, 관료, 경찰, 군, 사법부, 종교단체, 예술분야, 경제분야, 해외지역 등등 곳곳에서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 4776명의 인물들은 친일 행적이 명확히 파악되는 핵심인물들이 선정된 자들이니, 동족을 억압했던 무명의 친일파들은 아마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많았을 것이다. Big Brother의 눈과 귀와 몽둥이가 되어 자신의 이웃을 못살게 굴었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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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경찰' 그룹에 속해 있었다. 경찰이라면 지근거리에서 동포들에게 폭압을 행사했던 자들 아닌가? 인두로 허벅지를 지지고 채찍질에 물고문에 온갓 못된짓을 제 손으로 저지른 자들. 한자(漢字)까지 동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쨋든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친일파 목록에 속해 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좀 부아가 났다.

또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만약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었더라면 나는 명단 속의 '그'처럼 친일을 자행했을까? 아니, 살기 위해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자발적으로 친일을 자처하지 않을 것 같지만, 목에 칼이 들어 온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친일의 동기가 자발적이었냐 강압에 의한 것이었으냐에 따라 죄질의 경중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4776명의 명단 안에 포함된 '나' 혹은 '그'. 그는 어떤 몹쓸 친일 행적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무슨 이유 때문에 친일파에 동참하게 됐는지 알고 싶다.

명단만 우선 공개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차후에 자세한 친일 행적도 함께 열람했으면 한다(자료집이 나왔다는 데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친일인명사전에 나온 게 꽤 늦은 감이 있다. 늦은 만큼 속속들이 공개됐으면 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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