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를 승진시키지 마라   

2012. 9. 17. 11:37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 믿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토론 그룹의 일원으로 끼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를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할 겁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는 자, 뭔가 잘못되면 자신은 뛰어난데 주변 상황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는 자, 즉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에게는 리더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람들로부터 리더의 소양을 갖춘 자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동료들이 아니라 지근거리 너머에 위치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에게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기 쉽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과 동료 연구자들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브루넬은 효용이 이미 증명된 설문지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 5대 성격 특성, 자존감을 측정한 후에 무작위로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했습니다. 각 그룹에게는 학생회의 프로그램 디렉터에 지원한 후보자의 가상 프로필을 읽고서 후보자의 리더십과 능력 등을 평가하는 위원회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서 그룹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했죠. 토론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그룹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적어야 했죠. 분석 결과,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그룹의 리더가 되길 원하는 정도가 높았고 자신의 리더십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참가자가 다른 멤버로부터 높은 리더십 평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실험은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거나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학생회 디렉터를 평가하는 일처럼 확실한 '정답'이 없는 문제를 토론 주제로 주었기에 나르시시즘과 리더십 점수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을지 모릅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브루넬은 난파선이 어느 섬에 가까스로 당도한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난파선에서 구할 수 있는 15개의 물건을 생존에 필요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과제를 참가자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4명씩 구성된 그룹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 그룹의 의견을 결정해야 했고, 토론이 끝난 후에 자신과 다른 멤버의 리더십을 평가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멤버로부터 리더십 평가를 높게 받았죠. 하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은 개인과 그룹의 성적(15개 물건을 옳게 배열하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실상은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였죠.


브루넬은 MBA 과정에 다니는 153명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무작위로 4명씩 구성된 각 그룹은 가상의 기업이 기부한 자금을 가지고 예산을 정해야 하는 학교 이사회의 역할을 맡아 자기 그룹의 의견을 최종 결정해야 했습니다. 앞의 두 실험과 다른 점은 보다 객관적인 측정을 위해 2명의 훈련된 평가자가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 훈련 받은 전문 평가자가 측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자가 역시 높은 리더십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어떻게 하여 다른 이들로부터(심지어 전문 평가자로부터) 리더로 인정 받는 걸까요? 아마도 그들은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의견을 남들보다 자주 개진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나르시시스트의 태도가 다른 멤버들에게는 자신감으로 인식되어 보다 쉽게 영향 받고 보다 쉽게 설득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이유가 분명치는 않지만 어쨌든 나르시시스트들은 리더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브루넬의 실험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 동안 느낀 리더십을 평가토록 한 것이기에 멤버들이 오랫동안 같이 일할 경우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동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으려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동료들에 의해 빨리 탈락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그저 '왕자병', '공주병' 환자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영악한 나르시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의 발톱을 숨기며 남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상사에게는 더욱 그러하죠. 여기에 사람을 잘 다루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회적 스킬을 가미하면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고 선발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리더로 선발할 권한은 대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혹은 경영자)가 쥐고 있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점(동료들의 관점이 아니라)에서는 나르시시스트를 비(非)나르시시스트보다 '좋은 리더'로 여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은 리더를 뽑기 위해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방법도 나르시시스트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브루넬의 세 번째 실험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평가자도 나르시시스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평가 센터가 나르시시스트의 승진을 돕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르시시스트들을 승진의 사다리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발톱을 철저히 감춘 나르시시스트를 밝혀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직원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는 것 뿐입니다. 


그간 이 블로그에서 나르시시스트에 관해 언급한 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성과를 우선하기에 조직 성과를 방해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창의성을 저해하며, 지나치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서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급기야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응당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로 착각하기도 하죠. 나르시시스트가 조직의 리더로 잘못 인정 받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일 또한 건강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방법임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Amy B. Brunell, William A. Gentry, W. Keith Campbell, Brian J. Hoffman, Karl W. Kuhnert, Kenneth G. DeMarree(2008), Leader Emergence: The Case of the Narcissistic Leade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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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pinn.tistory.com BlogIcon 핀☆ 2012.09.19 09:16 신고

    기업에서 나르시스트는 일종의 자기PR을 잘하는 사람, 쉽게 말해 처세술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해도 될까요? 실속은 없지만, 이미지를 잘 구축해서 윗사람들로부터 '똘똘한 사람'으로 자기를 팔 줄 아는 그런 사람이요. 저는 이런 걸 어떤 부류에게서 느낀 적이 있습니다. 말만 번지르르 잘하는구나 싶은 부류요. 차별적인 발언이 되기에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일을 60만큼 하고 보고는 120만큼 한 것처럼 꾸미는 부류가 있죠. 반대로 100만큼 일하고 60만큼 보이게 하는 억울한 사람들도 있구요. 근데 대학이나 사회에선 전자의 능력을 키우길 권합니다. 이 글을 읽어보면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겠지만, 역으로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로 치고 나가는게 현실이라는 걸 뜻하기도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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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9.20 15:07 신고

      나르시시스트를 은연 중 장려하는 사회 풍토는 심하게 말하면 쇠락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