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처럼 행세하는 리더, 그는 위험하다   

2018. 2.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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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립학교에서 있었던 일. 이사장은 한 달 중 하루를 '잔반 없는 날'로 운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날 만큼은 급식에서 나오는 잔반을 줄여서 환경 보호에 일조하자는 좋은 의도에서 내린 지시였을 것이다. 학교는 이 '잔반 없는 날'이 되면 퇴식구에서 잔반 수거통을 아예 없애 버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이사장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 내린 것인지, 아니면 밑의 사람들이 과도하게 충성하느라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말 그대로 그날은 잔반 없는 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잔반 없는 날에 반찬으로 나온 메뉴가 하필 생선이었다. 한 학생이 "선생님, 생선 뼈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비록 잔반 없는 날이라지만 생선 뼈까지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선생님은 "그것은 못 먹으니까 그냥 모아서 버려라",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사장이 식당으로 시찰을 온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잔반 없는 날이 잘 지켜지는지 직접 눈으로 감독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선생님은 아무리 생선 뼈라지만 잔반이 버려지는 광경을 이사장에게 발각되어 꾸중이라도 들을까 싶었다. 그는 몰래 검은 비닐봉투를 구해 와서 생선 뼈를 거기에 버리게 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 생선 뼈를 버렸다. 전해 들은 이야기라 세부내용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알다시피 사립학교에서 이사장은 무소불위의 권위를 자랑한다. 교원의 '임면'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립학교도 있지만) 이사장의 말은 그대로 법이 되는 경향이 있다. 검은 비닐봉투에 생선 뼈를 모아 버리게 한 교사를 보고 "생선 뼈라서 잔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사장에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그 사람 참 융통성 없다"고 핀잔을 줄지 모른다. 그의 '알아서 기는' 모습이 우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그 교사와 같은 입장이 된다면 "그런 기지로 위기를 모면했다니, 잘 했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칭찬을 해줄지 모른다. 이사장의 눈 밖에 나면 좋을 일이 없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범접 불가능하고 반론 제기가 용납되지 않는 권위가 조직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훼손하고 저하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누구나 이 이야기처럼 사실 그대로 말하면 될 것을 권위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한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또한, 독자들 중에 권위자가 있다면 그 권위가 크건 작건 밑의 사람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행동한다는 느낌을 한번 이상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어찌보면 제왕적 리더십은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다. 그리고 제왕적인 리더 한 사람이 모든 의사결정을 휘어잡는 조직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융통성 없을 정도로 리더의 말에 순종하는 게 '진화적으로' 가장 유리한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문제는 강력한 권위가 조직을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점이고, 그 동력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나면 '순종 전략'은 가장 불리한 생존방식이 된다는 점일 것이다. 생선 뼈를 검은 비닐봉투에 모아 따로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립학교 이사장은 "내 말 한 마디면 군말 없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고 아마도 흡족해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학교라는 조직의 특성(보수적이고 환경 변화에 안정적인) 때문에 제왕적 리더십이 가장 적응력 높은 리더십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기업은 어떠한가? "오늘은 생선 뼈가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잔반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의 사소한 직언조차 하지 못하는 조직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별 문제 없는 조직이다. 하지만, 조직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그저 개인의 안위를 위해 목소리를 줄이고 행동반경을 개인의 직무 범위 내로 '적극적으로' 국한시키려는 조직은 상황이 비우호적으로 변하면 자연도태의 제1순위가 될 것이 하지 않을까? 알아서 기는 조직일수록 위기가 발생하면 리더의 입만 쳐다보기 때문에 대응 타이밍을 놓쳐 버리기 일쑤다. 현장에서 재량껏 대응해도 될 걸 윗사람 지시를 받고 나서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왕적 리더십은 '적응력 제로'로 가는 지름길(?)이다.


권한이양은 권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생존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권한이양은 조직 통솔의 누수가 아니라, 변화에 창의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그렇다고  권한이양이 조직의 구조를 뒤바꾸는 것과 같은 장대한 사업은 아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풍토만 마련해주면 된다. 다만 리더가 먼저 관대해져야 할 것이다. 잔반 없는 날에 생선 뼈가 버려져도 용인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관대함이면 충분하다.


직원이 문제 상황을 보고하면 마치 '왕'인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듯이 이내 얼굴을 찌뿌리고 화만 내는 상사는 리더의 자질이 없다. 직원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라고 직원들보다 많은 보상을 받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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