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차의 엉덩이를 보며 든 생각   

2024. 3.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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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고,객사를 방문하러 경인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공기 질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완연한 봄이 느껴질 정도로 햇살이 따뜻하더군요. 요즘 제가 즐겨듣는 Lissy McAlpine의 노래(특히 Older라는 곡)를 들으면서 약간은 노곤한 기분으로 운전을 하던 중이었데, 상습정체구역에 들어서자 여지없이 차가 밀렸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품을 하다가 앞차 트렁크에 있는 엠블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이한 엠블럼은 전혀 아니었어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아자동차의 새 엠블럼이었으니까요. 나온 지 좀 됐기에 새 엠블럼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됐기에 그 모양만 보면 바로 ‘기아’를 연상하겠지만, 아직 저는 그걸 볼 때마다 생경하다란 인상을 받습니다.

 

KIA를 옆으로 흘려 쓴 듯 하고 A의 가로선을 없애서 V를 거꾸로 만든 로고. 찬찬히 뜯어보면 그게 KIA란 단어를 멋스럽게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불현듯 볼 때마다 ‘저게 뭐더라?’라고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런 어색함이 사라지겠지만, 자사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가 이렇게 익숙해질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어쩌면 제 인지능력의 부족이겠죠, 뭐.)

옛날 기아자동차의 로고는 공장 굴뚝을 연상시키는 모양이었습니다(기아측은 굴뚝 연기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만). 그리고 현재의 로고로 바뀌기 전은 빨간 타원 안에 빨간 글씨로 KIA가 들어간 모양이었죠. 이때도 A에는 가로선이 없었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아자동차 로고의 변천을 보면 KIA란 회사명을 계속 고집하는 듯 합니다.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쓰던 로고를 제외하곤 그렇죠. 왜 회사명을 로고에 넣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싶을 정도로 고집스런 패턴입니다.

 

알다시피 메르세데스 벤츠의 로고(엠블럼)은 ‘삼각별’이고 아우디의 것은 ‘네개의 고리’이고 쉐보레는 십자가 모양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게 어느 회사의 자동차인지 대번에 인식합니다. 토요타, 혼다, 현대자동차와 같이 회사명의 맨앞 철자를 엠블럼에 활용하는 회사도 있는데, 역시 그 모양만 봐도 기업명과 바로 연결시킬 수 있죠. 오랜 브랜딩 노력의 결과죠.

 

물론 기아자동차처럼 회사명을 엠블럼에 사용하는 자동차 회사도 있지만, 대개의 기업들은 로고나 엠블럼을 하나의 상징으로 형상화합니다. 굳이 글자로 설명하지는 않죠. 당연히 기아 엠블럼에 쓰인 글자의 각도나 색깔 등에 나름의 상징이 있을 것이고 (잘은 모르지만) 브랜드 철학이 담겨 있을 겁니다. 허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네요. 그저 예전 빨간 타원 로고를 세련된 모양으로 바꿨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한번 회사명을 로고(혹은 엠블럼)에 담으면 계속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관념이 자리잡는 것은 아닐까, 앞차 트렁크에 붙은 엠블럼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왕 바꾸는 로고를, 한번 바꾸면 다시 바꾸기 어려운 로고를 ‘확!’ 바꿀 용기는 나지 않았을까, 라고도 생각했죠. 그리고 참신한 발상을 가두는 ‘과거부터 그래왔다’는 감옥이 상당히 완강하구나, 라고도 새삼 느꼈습니다. 혁신은 꽤나 어렵다는 것도요. 이렇게 오늘은 앞차의 엉덩이에 찍힌 엠블럼을 보며 이 생각 저생각 해 봤습니다.

 

덧글 1:  들리는 바에 따르면 기아자동차 내에서 새로운 엠블럼(새로운 브랜딩 전략)의 성패를 궁금해 한다고 하는데, 어줍잖은 저의 생각이지만 아직 성패를 따지기엔 이르다고 봅니다. 고객과 충분한 ‘브랜드 대화’가 이루어진 후에 판단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덧글 2: 개인적으로 기아자동차는 저의 첫 직장이었기에 그만큼 애정이 가는 기업입니다. 미안하지만, 생각의 감옥을 탈옥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예로 든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기아의 리브랜딩 성공을 기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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