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보면서 결정하겠다'란 말은 하지 마세요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절대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고,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사이의 무력 분쟁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북쪽에서 늘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의 존재는 상수이지만, 그들이 작금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어떤 변수를 내세울지 모릅니다. 언젠가 파국으로 치달을 기후 위기 역시 주요 위협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품의 출시 시기를 재빼르게 결정하기보다는 일단 출시를 미루고 상황을 보면서 출시 시기를 정하자고 결정내리기 쉽죠.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은 결정을 하지 않고 기다리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거나,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거나, 자연스럽게 불확실성이 해소되리라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기대한다고 해서 진짜로 그리 되지는 않습니다.
실은 이렇게 급변하고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결정을 빨리 하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기회의 창'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축구에서 공을 잡은 공격수가 바로 슛을 해야 하는데 좀더 좋은 각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상대편 수비수에게 막혀 버리고 맙니다. 저는 의사결정 실패의 대부분은 의사결정 내용이 나빠서라기보다 의사결정 시기를 놓치는 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비근한 예로, 의정 갈등 문제 해결에 정부가 차일피일 결단을 미루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이렇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서 덧붙이는 대표적 변명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럴 듯한 변명으로 들립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유연하다'라는 말의 정의부터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저는 유연함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한 가지 안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개의 대안을 미리 확보해 두고 특정 대안을 차별하지 않으면서 의사결정하는 것"
체조선수의 몸은 상당히 유연한데요, 그들의 유연함이란 '가능한 한 많은 형태(즉 대안)에 자신의 몸을 위치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여러 개의 대안을 미리 마련해 두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조건이 형성되면 어떤 대안을 선택하겠다는 계획 역시 수립해 둬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결정의 적기를 잡을 수 있죠.
어떻습니까? 유연함이란 그냥 앉아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체조선수들이 몸의 유연함을 높이려고 모진 훈련을 감내하는 것처럼, 유연한 의사결정을 하려면 부단한 고민과 계획과 수정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별다른 노력없이 의사결정을 미루기만 하면서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언어도단이니까요.
그래도 의사결정을 연기하면 여러모로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안 하면 손실이 생기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말이에요. 그러나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대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리고 의사결정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음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은 또 어떻게 막을 생각입니까?
환경 변화가 빠르고 위험하면 의사결정도 그 속도에 맞춰 빠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좀더 상황을 지켜보고...'란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조직(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는 미래가 없는 법이니까요.
유정식의 경영일기 구독하기 : https://infuture.stibee.com/
'[연재] 시리즈 > 유정식의 경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원은 주6일 근무하라'는 기사를 보며 (4) | 2024.04.19 |
---|---|
초기에 힘든 게 길게 보면 낫다 (4) | 2024.04.18 |
<삼체>에서 발견한 권위주의의 포악성 (15) | 2024.04.16 |
이번 총선을 보며 든 몇 가지 생각 (18) | 2024.04.15 |
심플한 경영, 심플한 리더십 (12) | 2024.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