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에 만난 모 기업은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 때문에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어떤 관리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들이 돌파구 삼아 채택한 전략이 무엇인지 알게 됐죠. 저는 그걸 들으면서 과연 전략이라고 칭할 만한 것인지 귀를 의심했답니다.
효과가 있냐 없냐는 차치하고서라도 고객 니즈에 맞춘 새로운 제품 컨셉트를 제안한다든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혁신적으로 개편하겠다든지 등의 전략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전 직원은 앞으로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한다!"가 그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전략이었거든요.
알고보니 이 회사는 이 전략을 그동안 여러 번 구사했더군요. 그리고 그런 전략이 약간의 매출 증가를 가져오긴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 더 일하는데 당연히 매출은 늘어나겠죠.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면 돌파하지 못할 리스크가 없다!"라는 결연한 선언 앞에 혁신은 설 자리가 없었고 이 회사는 수년 째 적자를 이어가다가 8년 전에 국내 사업을 접었습니다.
왜 이런 말로 오늘 일기의 서두를 열었냐면, 바로 어제(4월 17일) 다음과 같은 타이틀의 기사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삼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에게 주 6일 근무 권고"
말이 권고지, 사실상 의무라고 볼 수 있는, 그룹 차원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는 조치입니다. 요즘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가중되는 위기 상황이 정말로 심각해서 그걸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 같은데, 저는 이 기사를 보고 '1시간 일찍 출근, 1시간 늦게 퇴근' 전략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물리적으로 하루 더 일하도록 하면(임원에 한정해서) 위기감을 불어넣을 수 있고 해이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 내수기업에서도 언급되지 않을 조치가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인 삼성에서 나왔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죠. 저도 깜짝 놀랐으니까요.
임원들만 하루 더 출근해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작금의 위기를 타개할 전략을 궁리해야 할까요? 혼자서? 아니면 다른 동료 임원들과 함께? 그리고 그 밑의 부장(혹은 팀장)들은 상사인 임원이 출근해 있는 토요일에는 무조건 전화 대기를 해야 할 겁니다. '이게 맞냐, 저게 맞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냐?' 등을 물으로 수시로 전화가 올 테니까요(아니면 '심심하니까 나랑 밥이나 먹자'라고도 할 수 있겠죠).
하루 더 출근해서 사무실에 갇혀 있게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로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관찰하라고 하는 게 더 나은 방법 아닐까요? 그렇게 해야 위기 타개의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해법은 고객이 있는 현장에서 찾아야 하지, 사무실 PC에서 나오지 않으니까요.
위기의 질량이 워낙 크게 느껴지고 상황 변화도 긴박해서 '불 끄러 나오라'는 마음으로 전파한 조치라고 이해는 되지만, 삼성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지닌 조직이라면 이보다는 좀더 스마트한 행동 방침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에 이 글을 써 봅니다. 몇 주 안 되지만 삼성전자 주주라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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