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한번쯤 이런 생각한 적이 있을 겁니다.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 회사를 그만 둘 때나 고의로 어떤 모임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때 혹은 억울함을 보상 받고자 누군가와의 약속을 일부러 깰 때 우리는 속으로 이 말을 뇌까리곤 합니다.
특히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런 보상이 돌아오지 않거나 오히려 희생양으로 몰려 '그곳으로부터 이탈'을 결심할 때 우리는 이런 작은 '저주'를 속으로 날리죠. 솔직히 저도 몇 번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던가요? 여러분이 없어도 일이 잘 돌아가지 않던가요? 그곳에 속할 때는 여러분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겠지만 어이없게도 누군가가 여러분을 '손쉽게' 대체하지 않던가요? 아니면, 아예 여러분이 하던 일이 없어도 되는 일이였다는 듯 잊혀지지 않던가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분이 없어도(그리고 '내'가 없어도) 조직은 잘만 굴러갑니다. 겸연쩍게도 말이에요.
이 작은 '진리'를 오늘(일요일) 새삼 되새겼답니다. 오늘 낮에 OTT에서 시청한 일본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는 몇 번의 인생을 되풀이해 살면서 실수나 사고를 예방하고 교정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더군요.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잔잔하고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장면 중에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를 느끼게 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삶을 되풀이하는 주인공은 그 앞의 생애에서 벌어진 비행기 사고를 막으려고 직접 파일럿이 됐습니다. 비행기의 기장이 되어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지 않을 항로로 기수를 돌리려고 했던 거죠. 그 비행기에 탄 친구들과 승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머리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미생물 연구원으로 네 번째 삶을 살 때 그녀는 새로운 균을 발견했고 그 덕에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생(다섯 번째 삶)에는 비행기 파일럿으로 살기에 당연히 그 균을 발견할 수 없었을 터였죠. 그녀는 180명의 승객을 구하려다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그러다 그녀는 네 번째 삶에서 자신이 발표한 것과 같은 주제의 논문이 출판됐는지 검색하더니 복잡한 표정을 짓습니다. 누군가가 그 균을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이미 논문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출판 날짜를 보니 자신의 출판일보다 몇 년은 앞섰습니다.
'오히려 내가 이 균을 발견하지 못하게 막은 걸림돌은 아니었나?'
자기가 그 자리에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것, 아니 자기가 없었으면 누군가가 벌써 이룩했을 업적이란 점에서 세상은 더 잘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안도하면서 비행기 기장이 되어 승객을 구하겠다는 계획에 몰두합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나 보자!'는 우리 각자가 1인칭 시점(자기 얼굴을 보지 못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만, 얄밉게도 '그곳들'은 잘 돌아갑니다. 아쉽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가 빠져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갑자기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다고 팀이나 회사가 망하지는 않으니까요.
다행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살면서 여러 번 내뱉은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란 저주를 흡수하고 완충시킬 만큼 충분히 안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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