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주 방문하는 오디오 관련 카페에 어떤 회원이 이런 질문을 올렸습니다.
"OOO가 작동이 안 되네요. 왜 그럴까요?"
흔히 나오는 질문이지만 문제는 그가 본문에 이렇게만 썼다는 겁니다. 사진 하나 달랑 올려서 말이죠. 저는 이 글을 보자마자 짜증이 났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여러 회원들이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게시판이긴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만 물어보고 끝을 낸 그의 태도가 괘씸했달까요?
작동이 안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기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것과 다른 기계 사이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옳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다른 기계의 고장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그저 어딘가가 끊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어떤 원인인지 알아야 "이렇게 조치해 봐라"는 조언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적어도 글쓴이가 "이렇게 저렇게 오디오 기기들을 연결했는데 이런저런 현상이 나타난다"라는 식으로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다른 사람들이 원인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단문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띨 때마다 저는 아예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알아서 하세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라고 무시해 버리곤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왠일인지 묻고 싶어졌습니다. 경영일기의 소재가 되겠다 싶기도 했죠. 아래는 저와 그 사람 간의 댓글을 대화식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누구인지 밝혀질수 있기에 실제 내용을 각색하고 축약했습니다)
나 : 상세하게 증상을 말씀해 주셔야 정확한 조언이 가능해요.
그 : (질문했던 걸 반복하며) OOO가 작동 안 합니다.
나 : 그러니까 작동 안 하는 원인을 알려면 자세히 설명하셔야 알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알려주세요.
그 : BBB를 연결했습니다. CCC도 해 봤고요 DDD는 이상 없습니다.
나 : (짜증이 나서) 그거 말고, 소스기기, 앰프, 스피커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했는지 알려 달라고요.
그 : 정상적으로 연결했습니다.
나 :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회원분들께 토스합니다.
여기까지 댓글을 주고 받다가 저는 모니터를 향해 "그럼, 알아서 하셔."라고 던지듯 말하고 그 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분명 현재의 연결 상태와 증상을 설명해 달라고 했음에도 그는 마이동풍 같았거든요. 옆에 앉아 함께 오디오 시스템을 들여다 봐도 쉽지 않을 원인 파악을 사진 한 장 달랑 보여주고 질문 하나 달랑 던져 놓고 기대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심보일까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질문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게 기본적인 '질문의 예의'가 아닐까요? 상대방이 신이 아닌데 짧은 질문 툭 던져 놓고 답을 알려달라니요? 이 무슨 '순진무구한 똥꼬 배짱'일까 싶은 사람들을 여러분도 분명 경험했을 겁니다. 질문할 줄 전혀 모르는 사람들 말이죠.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gage Out)'이란 말은 질문의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냇물에 돌 하나 던지듯 질문을 '배설'하면 영양가가 전혀 없고 성의조차 없는 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욕 먹기 일쑤일 테고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으로 찍히겠죠. 쫓겨나거나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니 살면서 뭘 배우겠습니까?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저는 자기성찰이란 말을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을 얻는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남에게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자신에게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저 '난 왜 이러지?', '왜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비협조적이야?'라는 하나마나한 질문만 하염없이 배설할 뿐이겠죠. 자기성찰은 언감생심, 명쾌하고 효과 있는 답을 구할 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살면서 뭘 깨닫겠습니까?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찾아 가겠습니까?
나쁜 질문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남들보다 덜 배우고 덜 성장하며 덜 깨우치고 덜 의미있는 삶을 살 테니까요. 남들보다 늦게 배우고 늦게 성장하며 늦게 깨우치고 늦게 삶의 의미를 찾을 테니까요.
그러니 누군가에게 질문 거리가 생기면 질문의 경중과 상관없이 그 즉시 질문을 마구 던지지 마세요.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여러분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인식할지 고민하세요. 천천히, 상세히, 조리 있게 던지는 좋은 질문들이 쌓여 여러분의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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