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것'의 힘   

2024. 1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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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생태학자 최재천 선생 부부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최재천 선생이야 워낙 유명한 분이니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되겠죠? 식사를 마치고 우리집에 두 분을 모시고 와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최재천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분의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채널은 구독자수가 74만 명이 넘는, 남들의 부러움을 가득 살 만한 파워 채널입니다. 어쩌다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알고 보니 ‘돈’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물생태학자, 제인 구달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텐데, 요침팬지가 주요 연구 주제인 그녀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고 우리나라에도 몇 번 방문했습니다. 동물생태학 혹은 동물행동학이라는 같은 연구 분야에 있는 최재천 교수와 구달 박사는 1996년에 처음 만났고 생명 존중과 환경 보존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끝에 2013년에 7월에 ‘생명다양성 재단’이라는 비영리 공익재단을 설립했죠.

“제인 구달이 워낙 유명한 학자라서 재단을 설립하면 여기저기에서 후원금이 들어올 줄 알았죠.” 박사는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헌데 그건 그냥 저만의 생각이더라구요. 재단을 운영하고 직원들의 인건비를 충당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돈이 필요한데, 그 돈 마련하기가 아주 빠듯한 거에요.”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유튜브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거에요.”

기업이나 독지가의 도움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정말로 돈 때문에 시작한 유튜브였다고 하더군요.  

 



“채널을 개설하자마자 6, 7천명까지는 빠르게 구독자가 늘어났어요. 아마도 나를 잘 알고 내 책을 좋아하는 팬들이 그 정도 되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래서 분위기가 좋았는데요, 그 다음부터는 구독자 증가가 지지부진하더군요. 1년이 다 돼도 그 수준에서 크게 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요, 나중에 제작팀이 고백을 하나 하더군요. 제가 영상을 찍으러 스튜디오를 들어올 때마다 속으로 ‘아마 이번까지만 찍고 그만하자고 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런 소리를 한번도 하지 않더랍니다. 동영상 찍을 때가 되면 여지없이 가방을 둘러메고 매주 스튜디오에 나오길래 자기네끼리 놀랐다고 해요. 구독자수에 연연하지 않고 영상을 찍고 홍보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날 뭔가가 터졌는지 구독자가 10만 명이 넘어섰고 지금은 42만명(이야기 나누던 당시)이 넘게 됐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한테 엄청 혼났어요. 약간의 ADHD끼가 있었는지 뭐 하나에 집중을 하지 못했죠. 그랬다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크게 변했어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꾸준히 하게 됐답니다. 다른 거 별로 생각하지 않고 말이에요. 유튜브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부부가 돌아가고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저는 ‘업적’이란 단어의 뜻을 떠올렸습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의미있는 무언가를 쌓아 올린 것’이 곧 업적인데, 그 쌓아올림의 과정은 길고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돌 하나’를 쌓아올리는 것으로는 어제와의 차이점을 전혀 느낄 수 없죠. 

마음 속에는 10미터 이상의 탑을 그리고 있는데, 오늘은 고작 몇 밀리미터를 쌓을 뿐이니 “이거 해서 뭐 하나?”란 자괴감이 들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꾸준함과 우직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자신의 성과물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죠. 

나중에 커다랗게 쌓아올려진 탑을 마음에 그리는 것은 어쩌면 오늘 쌓는 작은 돌멩이를 무의미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찮게 느껴지고, 보다 빠른 지름길이나 편한 길이 있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집중력을 잃고 말죠. 

섣불리 꿈꾸지 마세요. 지금 각자가 무엇을 계획하든 먼훗날에 쌓아올려질 멋진 모습을 상상하지 마세요.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결승선을 멋있게 통과할 자신을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내가 내딛는 한 발 한 발에만 집중하면 언젠가 결승점을 지나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다. 업적은 그런 것입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죠. ‘뭘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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