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우면 일 못한다   

2008. 10. 9. 14:57

어느 날 모 고객사의 A사업부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건물 로비를 들어서니 웬지 모를 답답함과 음침함이 느껴졌다. 조명은 흐릿했다.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래도 그곳은 로비에서의 실망스러움을 만회해 주겠지, 라는 생각은 여지 없지 빗나갔다. 파티션은 거의 천정에 닿을 정도로 높았고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책상 아래와 구석에 널려있었다. 비록 남의 회사였지만, 마치 내 방이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큰 사무실에 2~3명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게다가 조명은 왜 그리 어둡고 공기는 쌀쌀한지...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그런 것인지, 원래 조도가 낮은지 알 수 없었지만, 착 가라앉은 기분은 내내 좋지 않았다.

(사진 : 유정식)


그곳에서의 일을 마치고 같은 건물에 있는 B사업부(동일 회사의)의 사무실로 자리을 옮겼다. 그곳도 역시 우울하겠지, 라는 지레 짐작은 틀리고 말았다(내 예측은 항상 틀린다니까...). 그 사무실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조명도 환하고 직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곳곳에 놓인 화분들이 사무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한 회사 내에서 이렇게 사무실 분위기(조명, 온도, 공기, 직원 표정 등등)가 다를 수 있다니! 알고 보니 그것은 각 사업부의 성과와 다르지 않았다. A사업부는 안정적인 성과를 달성하느라 현재 악전고투 중이었다. 그럼에도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B사업부는 시장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회사 내에서 성과 기여도가 높은 곳이었다.

아하! 사무실 분위기와 성과가 연관이 있구나! A사업부 직원들의 표정이 어두운 게 다 이유가 있구나! 목표 달성에 매일 채근 당하다 보니 사무실 레이아웃, 정리정돈, 장식, 조명 등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게다. 사무실 인테리어를 좀 바꿔 보겠다고 하면, 실적이나 낼 것이지 팔자 좋게 그런 거나 할 생각이냐고 질책 받을까 지레 포기했을 게다.

나는 사무실 환경(조명,인테리어, 표정 등등)가 바로 그 회사의 현재 성과와 미래 성과를 짐작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사무실 분위기를 환하게 변모시키면 거꾸로 성과를 올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다.

근무환경, 그 중에 특히 쾌적한 조명과 온도는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때문에 이런 '명제'는 대체적으로 옳다. '사무실 환경이 어떤들 그게 뭐 대수겠어?'라고 지나치기 쉽지만 사무실 환경이 직원들의 세로토닌(호르몬의 일종) 분비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세로토닌은 생산성에 관련된 호르몬이다. 세로토닌의 수치가 낮으면 불안감이 유발되고 수치가 높으면 행복감이 높아져서 업무 능률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의 생성은 2500럭스 이상의 빛에서 왕성해진다. 그러므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사무실의 조명을 밝게, 온도를 최적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할 맛이 나야 성과가 난다. 일할 맛이 나려면 일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꾸며 줘야 한다. 가난한 천재들이 골방에서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고 해서 근무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CEO들이 그런 식("돼지우리 같은 곳에서도 아름다운 작품이!")으로 생각한다. 자신들의 직원이 모두 천재가 아닌 걸 알면서도...

천재가 아닌 직원들은 어두우면 일 못한다. 돈 좀 들더라도 사무실 환경을 쾌적하게 바꾸고 유지하라. 장기적으로 보면 돈 남는 장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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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09 17:33 신고

    (무플 방지용 자플) 어제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몸살 날 것 같네요. ^^ 방문객 여러분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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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rainblue.egloos.com BlogIcon 레블 2008.10.09 17:39

    회사의 경영진들이 제발 그렇게좀 생각해주었으면..
    그런데 제가 있는 건물은 경연진이 그렇더라도 중앙냉난방식이어서 개선이 힘든것 같더라구요. 한여름에 정부시책따른다고 어찌나 덥게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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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13 10:34 신고

      경영진이 할만한 범위 내에서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의견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songkang.tistory.com BlogIcon 구월산 2008.10.12 01:53

    호손연구라고 책들에서 한번씩 언급하는 내용을 들어보셨겠지만..역설적으로 결과가 나왔데요.
    그 연구 중 하나가 인위적으로 조명을 매우 어둡게 해서 조립라인의 생산성 결과를 첵크했는데...결과는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나요..연구결과는 작업자에 대한 관심이 다른 조건을 앞선다라는 것이었는데..글쎄 논란이 많은 그 연구결과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안락한 의자,적당한 파티션,개인조명,특히 사무실의 맑은 공기와 신선한 커피..저는 이런 조건들을 너무 중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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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13 10:36 신고

      조명을 어둡게 했더니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것은...혹시 실험을 단기간에만 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장기적으로 관찰했더라면 생산성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의견 감사합니다.

  4. i_crazyflower 2010.09.14 17:55

    전 조명만으로 생산성과 영업성과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내 전체적인 환경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많은 경영자들이 사내 환경을 많이 무시하는 것 같아요. 전 애사심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는데요, 사내 환경을 좋게 할수록 회사에 대한 긍지나 충성도가 높아 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환경만으로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꼭 교육에 적용 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요? 또한 위에서 말씀하신 조명을 어둡게 했다는 것은 사람의 심리가 너무 밝으면 좀 불안해 하지 않나요? 전 너무 밝으면 불안하던데;; 편안할 정도로 했다는 뜻 아닐까요? 가령 커피숍처럼요. 아니면 완전 맑은 날은 기분이 업되고 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은 마음이 편안해지듯이. 그런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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