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문제입니까?   

2009. 6. 24. 10:01
반응형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의 사진. 펑크 난 바퀴를 교체하는 택시기사 바쿤의 모습. 누구의 문제일까요?


문제해결과정의 첫번째 단계가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정의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그 문제가 '누구의 것'인지 밝혀야 합니다. 누구의 문제인지(문제의 주인)에 따라 문제의 정의('무엇이 문제인가')가 달라지고 문제의 해결책('어떻게 풀까')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 서로 극과 극의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도대체 이건 누구의 문제야?'라는 질문을 해봄으로써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쓸데없는 해결책을 만드느라 기운만 빼기 십상입니다. 집주인이 누군지 알지 못하면 그 집을 구입하기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의 주인을 찾아내야 문제가 무엇인지 탐색 가능합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문제로 보이지만 문제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문제가 다르게 정의되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가정하겠습니다. 

업계 1위를 달리는 A사에 고객들이 화장실이 불결해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는 민원을 최근 잇따라 제기했다. 평소 와이프와 사이가 좋지 않아 괴로워하던 고객만족담당자는 이와 같은 고객 불만에 더욱 괴로워하는 중이고, 청소인력들 역시 모든 비난이 자신들에게 쏟아지자 의욕을 상실한 상태이다.

혹자는 위의 내용이 곧 문제라고 말하면서 별도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치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위의 내용은 상황(situation)일 뿐입니다. 문제(problem)가 아닙니다. 정의되지 않은(undefined) 문제입니다. 

자, 문제가 뭘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여러분은 '이 문제는 누구의 것인가?'라고 먼저 질문해야 합니다. 문제의 주인에 따라 문제의 정의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문제의 주인을 결정하는 과정도 다음과 같이 3단계 절차를 거치면 좋습니다.

1단계 : 문제의 주인이 될만한 후보를 모두 나열해 본다.
2단계 : 중요치 않은 후보들을 삭제한다.
3단계 : 이 문제의 의뢰인을 결정한다.

문제의 주인이 될만한 후보는 누구겠습니까? 가장 먼저 고객만족담당자를 생각할 수 있겠군요. 그가 고뇌한다는 것이 위에서 언급됐기 때문입니다. '고객'은 어떻습니까? 더러운 화장실을 시정해 달라며 민원을 제기했으니까요. 화장실을 주로 사용하는 '직원'이나 고객의 민원이 회사의 매출에 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는 '사장'도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청소아줌마'가 억울해 하면서 자신이 문제의 주인이라고 외칠지도 모릅니다. 화장실의 구조적인 문제(예: '푸세식'이라서) 때문에 깨끗하게 청소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와이프'는 어떨까요? 남편이 화장실 문제 때문에 회사에서 늘 늦게까지 근무하는 탓에 가뜩이나 미운 남편이 더 미울 테니까요. 일단 모두 후보로 책정해 보겠습니다.

문제의 주인이 '고객만족담당자'라면 어떤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시될 겁니다.

- 청소인력을 대폭 증원한다.
- 청소아줌마에게 뇌물을 요구한다. 안 그러면 교체한다고 협박한다.
- 직접 나서거나 부하직원을 동원해 화장실을 청소한다.
-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꾼다.
- 고객들이 회사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 고객들에게 뇌물을 줘서 입막음을 한다.
- 허위사실을 유포한 고객들을 고소한다.
- 사장이 이용하는 화장실만 깨끗하게 유지한다. 등등

청소아줌아가 문제의 주인이라면 해결책은 이렇지 않을까요?

- 수세식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 그 누구도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화장실을 폐쇄한다.
- 1인당 하루 1회만 이용하도록 통제한다.
- 고깝지만 더 열심히 청소한다.
- 고객만족담당자에게 뇌물을 줘서 눈감아 주게끔 만든다.
- 어차피 더러우니 대충 청소한다.

문제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문제의 주인을 정하지 않고 곧바로 해결책을 내버리면 '대략 낭패'에 봉착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고객만족담당자의 문제인 줄 알고 해결책을 멋지게 보고서로 제출했더니만, 청소아줌마가 달려나와 '이 무슨 쓸데없는 보고서냐!'고  멱살을 움켜쥘지 모릅니다.

자, '고객만족담당자', '고객', '직원', '사장', '청소아줌마', '와이프' 중에서 중요치 않은 누구일까요? 제가 보기엔 위에서 예로 들긴 했지만 '청소아줌마'는 문제의 주인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의사결정권한의 폭과 깊이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와이프' 역시 문제의 주인은 아닙니다. 화장실 문제가 남편과의 사이를 더욱 악화시켰을지는 모르지만 그저 간접적이고 부차적인 영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고객만족담당자', '고객', '직원', '사장'을 중요하게 다뤄야 할 후보들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의뢰인을 찾아야 합니다. 의뢰인은 문제주인의 후보들 중 한 사람이죠. 의뢰인은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숨어있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돈을 주며 문제를 해결해달라 요청한다면 그가 의뢰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돈을 주긴 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달라 말할 수도 있으므로 그가 꼭 의뢰인은 아닙니다. 때로는 돈보다는 '힘을 가진 자'나 '보살핌을 받는 자'가 의뢰인이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을 찾는 과정이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기업을 컨설팅할 때나 TFT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실질적인 의뢰인을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합니다. 경영전략팀과 팀워크를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도 그 결과물이 CEO를 만족시키기 위한 거라면 의뢰인은 CEO이며 문제의 주인도 CEO입니다. 하지만 'CEO의 의견은 상관없다. 우리 팀의 입장에서 작업하라'고 강력하게 요청한다면 의뢰인은 경영전략팀이 됩니다.

컨설턴트들은 가끔 '고객이 너무 많아서 프로젝트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문제의 주인이 누구인지 헛갈려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컨설턴트의 무능을 대변합니다. 프로젝트 초기에 문제의 주인(의뢰인)을 확고하게 결정(혹은 합의)하지 못했거나, 프로젝트 도중에 여러 외압에 이리저리 흔들렸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복수의 의뢰인을 아예 처음부터 상정하는 것이 문제해결과정의 혼돈을 줄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궁리해 본 다음에, 해결책의 교집합을 찾아내 모든 의뢰인이 win-win할 만한 최종 아웃풋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에서 본다면, 다만 이럴 때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 교집합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점, 특정 의뢰인을 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덧붙임 :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국정 지지도와 여당 지지도가 바닥을 깁니다. 과연 누구의 문제일까요? 정부의 문제일까요? 국민의 문제일까요? 정부의 문제라면, 구체적으로 누구의 문제일까요? 이런 상황을 해소해달라고 누군가 요청한다면 당신의 의뢰인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