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論證), 그까이꺼 아무것도 아닙니다   

2009. 6. 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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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장할 때(혹은 자기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줄 때) 어떤 방법과 절차를 사용합니까? 개인별로 설득력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현상, 실증, 사실, 이미 증명된 결론, 타인의 의견 등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납득시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조금 어려운 용어로 '논증(論證, Reasoning)'이라고 말합니다.

논증이라고 말하니까 논리학이나 과학에서만 쓰는 용어인 것 같아 거리감(혹은 거부감)이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이상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논증을 펼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논증의 의미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뼈마디가 쑤시네. 비가 올 거 같아"라는 간단한 문장도 논증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뼈마디가 쑤실 때마다 비가 오더라'는 축적된 경험을 적용하여 '비가 올 거 같아'라는 결론을 도출했기 때문입니다. "저 남자는 탤런트 뺨 치게 잘 생겼어. 바람둥이임에 틀림없어.", "왜 부장님이 하루종일 저기압이지? 분명히 사모님과 한판 했을 거야", "트위터가 버벅거리네. 중요한 사건이 터졌나 보군" 등등의 문장에서 논증이 발견됩니다.

논증과 문제해결은 그 과정이 서로 동일합니다. 논증이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듯이, 문제해결의 최종 목표도 의뢰인(문제의 주인)이 해결책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사'들은 논증을 행하는 올바른 방법을 숙지해야 합니다.

논증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상 --> 사실 --> 결론

논증이 가진 무게감에 비해서는 매우 간단한 구조입니다. 그러나 각 단계를 거치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그걸 하나씩 뜯어 보겠습니다.

먼저 현상에서 사실로 넘어가는 단계를 보기 바랍니다. 아마 몇 분은 '현상과 사실이 동일한 의미인데 왜 따로 썼지?'라며 의문을 던질지 모르겠군요. 일상에서 서로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 두 용어는 논증의 과정에서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다릅니다. 

현상(situation)은 말 그대로 지금 벌어지는 일이나 나타나 있는 지금의 상태를 뜻합니다. '고객들의 불만이 많다', '사장님이 머리를 감싸쥐며 소리를 지른다', '매출이 줄었다' 등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기술한 것이 현상입니다. 현상은 감각기관을 사용한 관찰(觀察, Observation)을 통해 나오는 아웃풋입니다. 

이때 관찰은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파악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이 분명 화난 것 같다', '우리 회사 망할 거 같애'라는 말은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됐으므로 관찰에 의한 현상 기술이 아닙니다. 어렴풋이 그럴 것 같다, 그런 감이 느껴진다, 라는 투는 올바른 관찰이 아닙니다. 물론 주관성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관찰하기란 쉽지 않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수준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상을 기술해야 합니다. 인터뷰, 현장 시찰, 데이터 수집 등이 관찰의 영역에 속합니다. 

논증의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관찰 --> 현상 --> 사실 --> 결론

그렇다면 사실(Fact)은 현상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사실은 '증명된 현상'을 의미합니다. 관찰을 통해서 기술한 현상이 실제로 그러한지 증명되어야 사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매출이 줄었다'라는 현상이 사실이 되려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매출 추이를 그려봄으로써 '아하, 정말 그렇구나'라고 증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증명 과정을 '실증(實證, Proof)'라고 합니다. 실증을 위해 과학에서는 실험(實驗, Experiment)을 하고 기업에서는 '분석(分析, Analysis)'을 실시하지요.

현상을 꼭 실증하지 않아도 곧바로 사실로 격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찰이 곧 실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 두 사람은 손과 발을 사용해 서로를 가격한다'라는 현상으로부터 '저 두 사람은 싸운다'라는 사실을 도출하기 위해 매번 실증을 시도한다면 우스꽝스럽고 바보처럼 보일 겁니다. 일상적인 것까지 실증하려다간 꽤 피곤한 삶을 살겠지요.

그러나 조직 내의 문제처럼 중요하고 복잡한 과제를 논증할 때는 반드시 실증을 통해 현상과 사실을 가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실증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사실을 기반으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다'라는 현상을 인터뷰(관찰의 일종)를 통해 얻었다면 실제로 그러한지를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조직의 실권자만 그리 느낀다면 이 현상은 실증될 수 없습니다. 조직의 실권자가 직원들의 역량을 못마땅해 하는구나, 정도만 실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논증의 구조에 한 단계가 더 추가되는군요.

관찰 --> 현상 --> 실증 --> 사실 --> 결론

논증의 바다에 푹 빠져보시겄습니까?


이제 실증을 통해 모아진 사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렵죠.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다'가 사실로 실증됐다면, 어떻게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예를 든다면 '능력 안 되는 직원들을 내보낸다', '직원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킨다', '능력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한다' 등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헌데, 사실과 결론 사이를 잘 보면 '이거 너무 논리적 비약이 큰 게 아닙니까?'라고 불만이 나올 법도 합니다.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회사에서 내보는 것이 항상 적절할까요? 나태한 직원들을 혼내는 차원에서 정신교육을 시켰는데 회사에 대한 앙심이 더 커져서 예전보다 더 태만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약(飛躍, Leap)'이란 말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이지만, 사실과 결론 사이의 논리적 비약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약이 필요합니다. '뼈마디가 쑤셔'라는 사실에서 멈추고 논리적 비약을 행하지 않는다면 '비가 올 거 같아'라는 결론을 결코 내릴 수 없습니다. 비약이 없다면 판단도 못 내리고 행동도 취하지 못합니다.

비약이 없다면 논증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재미도 없습니다. 비약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면 이렇게 되겠죠. '뼈마디가 쑤신다. 고로 몸이 아프다', '직원들이 나태하다. 고로 일을 안 한다'에는 비약이 하나도 없지만, 똑같은 의미를 그저 다른 말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논리적 비약은 반드시 '논거(論據, Basis)'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논거란 사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근거입니다. 이미 증명된 결론, 신빙성 있는 이론,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 개인의 경험법칙, 타인의 의견 등이 논거로 쓰입니다. '뼈마디가 쑤셔. 비가 올 거 같아'라는 논증에서는 과거의 경험상 뼈가 쑤실 때마다 비가 오는 확률이 높았다'라는 개인의 경험법칙이 논거로 사용된 거죠.

그러므로, 논증의 구조에는 한 단계가 또 추가됩니다.

관찰 --> 현상 --> 실증 --> 사실 --> 논거 --> 결론

일상생활에서의 논증('뼈마디가 쑤셔. 비가 올 것 같아')에서는 논거 자체가 증명됐느냐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명되지 않은 개인의 경험법칙이나 타인의 의견을 논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문제해결과정에서는 '참'으로 증명되어야 논거로 쓸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으니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논증에서는 '그런 직원들을 계속 데리고 있으면 회사 성과가 나빠진다' 혹은 '그런 직원들을 독려해봐야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등의 논거가 적용됐습니다. 이러한 논거가 과거의 경험이나 타사 사례 등으로 볼 때 거의 옳다면 이 논증은 성립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비약과 고집에 불과합니다.

논거를 채택할 때는 이미 증명된 결론(다른 사람이 이미 정립한 결론)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만일 증명되지 않은 논거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논증 과정을 거쳐 그 논거를 직접 증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논증의 구조를 살펴봤습니다. 말씀 드린대로 문제해결의 구조도 이와 동일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해결의 기법들은 모두 이 구조 속에 포함됩니다. 위의 6가지 논증의 단계를 꼭 머리 속에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좀 어려웠나요? 적어도 이번 기회에 그동안 혼용해서 썼던 용어(현상 vs 사실, 실증 vs 논거)라도 확실하게 구분했기를 바랍니다. '문제해결사'의 기본기는 여기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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