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을 사랑하십니까?   

2009. 7. 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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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을 설정함으로써 문제해결 과정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음을 지난 포스트에서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가설이 되려면 단순한 상황 이외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의 실마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가설은 문제해결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임을 이제 알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실증)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설의 실증 과정에서 가져야 할 마인드를 알아보겠습니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불굴의 발명가로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늘 각인돼 있습니다.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한때 영욕에 눈이 멀어 아름답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뉴욕시에서 사용할 직류 방식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발명한 후 사업을 전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교류 방식을 발명하고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교류 기술을 기반으로 전력 공급 사업에 뛰어 들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교류는 직류 방식보다 멀리 전기를 보낼 수 있고 전선이 잘 부식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전압을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가정에서 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교류의 장점을 모른 체하며 자신의 직류 방식을 홍보하기 위해 끔찍한 실험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산 채로 개와 고양이를 고압의 교류 전기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해서 교류가 직류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다녔습니다. 또한 사형 집행 도구로 교류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 의자’를 손수 발명함으로써 교류의 위험성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악의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웨스팅하우스가 전력 공급 사업권을 획득했고, 결국 그는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디슨은 ‘내가 발명한 직류 전기가 교류보다 우수하다’는 가설에 스스로 매몰되어 오로지 교류의 위험성을 규탄하는 데 힘을 모으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단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A로 인해 B가 발생한다’라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에 어떤 힘이 생긴다고 착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 직후에 자갈만한 우박이 떨어지는 이상기후현상이 나타나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 가설을 실증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이상 현상을 전부 원자력 발전소 탓으로 돌리기 십상입니다.

실증을 통해 가설을 참/거짓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가설의 참을 입증하는 데에 힘을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설을 반대되는 증거가 나타나면 가설을 기각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증거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가설을 반증하기보다는 입증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이를 증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카드 네 장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반대 면에는 짝수가 있다는 규칙을 만족하는지 확인하려면 어떤 카드를 뒤집어야 하는가?" 라고 물어 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카드를 선택해야 할까요? 답을 보기 전에 본인의 마음이 가는 카드를 집기 바랍니다.


골랐습니까? 아마 짐작이 맞는다면, 여러분들 많은 분들이 ‘A’나 ‘2’를 집어 들었을 겁니다. 맞습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할 겁니다.

위에서 설정된 가설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반대 면엔 짝수가 있다'입니다. 사람들은 이 가설을 입증하려고만 하지 반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A'나 '2'를 집어 듭니다. 만일 여러분이 ‘7’을 집었다면 입증이 아니라 반증을 시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증을 시도하는 사람은 연구 결과 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반증에 굉장히 약합니다. (고급 독자를 위한 설명 : ‘모음이 있으면 짝수가 있다’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대우(對偶)명제인 ‘홀수가 있으면 자음이 있다’는 명제도 참이 돼야 합니다. 완벽한 증명을 하려면 여러분은 ‘A’와 ‘7’을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반증이 귀찮더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문제해결사여!


가설을 설정할 때는 반드시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반증 가능성이 낮은 가설은 좋은 가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의 향후 매출액은 증가하거나 하락하거나 아니면 유지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을 반증(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매출의 향후 추이를 모두 언급했기 때문에 이 가설은 항상 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증의 여지가 전혀 없어서 실증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가설은 세우나 마나한 무가치한 가설입니다.

따라서 지난 글에서 제시한 '좋은 가설의 조건'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1) 문제의 원인을 파고드는 가설
2) 측정 대상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가설
3) 해결책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가설
4) 반증 가능성이 높은 가설

또한, 가설에 대한 실증 방법을 설계할 때도 입증과 반증의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오로지 입증만 가능하도록 실증 방법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제멋대로 실증 방법과 결과를 조작하여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황우석 사태'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가설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방법으로 실증을 행했습니다. 비윤리적인 난자 채취는 차치하고서라도 교묘한 사진 조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능력 있는 문제해결사라면 가설이 휘두르는 힘을 누를 줄 알아야 합니다. 가설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옳다고 가정한 명제'이니까요. 문제해결의 효과를 위해 잠시 눈에 씌운 색안경에 불과합니다. 가설을 설정했다는 말은 가설이 참/거짓을 실증하라는 의미지, 그 가설이 옳음을 증명하라고 숙제를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는 “지적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자기회의(自己懷疑,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가 가능한가 아닌가에 달렸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문제해결의 입장에서 다시 써보면 이렇게 됩니다. "가설의 실증을 위한 최소한의 마인드는 가설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회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입증되면 과감히 그것을 폐기하고 다른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인간은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습니다. 선호가 실증의 기준은 아닙니다. 가설은 실증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해야겠습니다.


* 덧붙임 : 이 글은 예전에 제가 쓴 글(http://www.infuture.kr/195)의 내용을 기초로 문제해결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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