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   

2010. 12.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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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다가와 자신이 기적을 경험했노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하늘에서 영험한 빛이 내 머리 위에서 잠시 떠도는 것을 보았소. 이는 신께서 내 간절한 기도에 응답했다는 뜻이라오.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는 마치 그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나 한 듯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기적을 목격했을 때의 두려움, 애절함, 환희, 경외감 등 감정의 파노라마를 펼쳐냅니다. 그리고 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를 합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말하는 기적을 믿어야 할까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오래 전에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말한 바 있습니다. '기적에 관하여'란 논문을 통해서죠. 요컨대 그는 '기적을 평가하는 방법'을 주장함으로써 당시에 꽤 분분했던 신학적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흄은 기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적이란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현상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경이롭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자연법칙를 깨뜨리는 '이상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란 자연법칙과는 달리 물체가 아무런 장치없이 스스로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을 때를 기적이라 부를 수 있죠.

흄은 "기적을 믿어야 할까?"란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현상보다, 그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더 기적에 가까워야만 그 기적을 믿을 수 있다." 말이 좀 어렵지만 상당히 명쾌한 판단법입니다.

그의 판단법을 풀어써보면 이렇습니다.

주장 : A라는 기적을 경험했다
주장이 옳으려면 : 
        당신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더 기적적이어야 한다
    =  당신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거의 없어야 한다
    =  당신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게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일이어야 한다

누군가가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났다'라는 기적을 주장한다면, 흄의 논리에 따라 다음과 같아야 그의 주장을 믿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개를 해보면, 이 기적은 믿을 수 없습니다.

주장 :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난 것을 봤다
주장이 옳으려면 : 
       당신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더 기적적이어야 한다
    = 당신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거의 없어야 한다
    = 당신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게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난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경험이 훨씬 빈번하고 일반적이다. 

당신이 잘못 봤거나 일부러 나를 속이려는 가능성보다 당신의 주장이 맞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따라서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났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기적에 대한 흄의 판단 방법을 '흄의 원리(Hume's Maxim)'이라고 부릅니다. 흄의 원리는 기적에 대한 평가에 사용되어 신학적 논쟁을 야기했지만, 그것을 일반화시켜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판단할 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주장이 처음 들어본 것이거나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질 때 흄의 원리가 좋은 판단 기준이 됩니다. 

다음과 같이 흄의 원리는 어떤 사람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사용되는 비판적 사고의 도구가 됩니다.

주장 : A라고 생각한다
주장이 옳으려면 : A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거짓일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아주 환상적이고 경이로우며 참신하게 보이는 주장을 여러 가지 현란한(?) 근거를 내세워 동의를 구할 때(혹은 강요할 때), 그 근거가 과연 참일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 근거가 거짓일 가능성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입증보다는 반증(反證)이 더 효과적이죠. 근거 중의 하나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 그 근거가 뒷받침하는 그 사람의 주장 역시 거짓이라고 즉각 판단을 내리면 되니까 말입니다. 입증에 초점을 두면 아마도 입증하기가 힘들고 귀찮아서 그의 주장을 편의상 믿어버리거나, 혹은 그가 그런 주장을 하거나 말거나 방치하고 말 겁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근거 없는 '요상한' 주장들이 득세하고 맙니다. 입증의 책임은 주장한 사람이 져야 하는데, 여러분이 입증 책임을 떠안을 이유가 없습니다.

권위자의 말, 언론의 보도, 정보를 가장한 광고 등으로부터 무차별 폭격을 받을 때 '흄의 원리'가 여러분의 주관을 지켜주는 튼튼한 방패가 될 겁니다. 황당한 기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데에 꼭 활용하기 바랍니다.

덧글 : 밝게 빛나는 것이 나타나고 물이 갈라지는 현상만이 기적일까요?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이 세계 자체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기적입니다. (본 포스팅을 종교적인 논쟁거리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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