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비 속에서   

2008. 5. 9. 23:31
반응형


5월이 시작되던 날, 나는 바람이나 쐴 목적으로 차를 몰고서 한강둔치에 나갔다.  강 바람이 시원했다. 도시의 매연이 섞여있을 테지만 탁 트인 강가에서 맡는 바람 냄새는 그래도 싱그러웠다. 나는 의자 시트를 한껏 젖히고 거의 누운채로 책을 읽었다. 낯선 곳에서 책을 읽으니 단어 하나하나가 맛있게 씹혔다.

한동안 더운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사위는 한껏 어두어지고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그리고 소나기 비슷한 비가 내렸다. 나는 책을 내려 놓고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굵은 빗방울들이 강물 위로 떨어져 강물과 하나 되는 모습과, 나뭇잎들이 무거운 비를 맞아 휘청대는 모습과, 자동차들이 일제히 윈도 블레이드를 작동시키는 모습과, 우산을 쓴 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강물을 바라보는 매점 주인의 모습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한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놀라서 고개를 숙인채 '아하하~' 소리치며 비를 피할 곳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닌 듯했다. 아마 만난지 일주일 쯤? 남자는 여자의 비 맞는 모습이 안쓰러워 뭐라도 해주고 싶어하는 표정이었지만, 혹여 오해가 생길지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 남자의 서툰 사랑처럼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어깨를 적시듯 5월이 가슴에 스며 들었다. 5월의 비를 조용히 맞으며 5월의 풀밭 위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 나는 곧잘 그랬듯이 옛 시절을 떠올려 그 풍경 위에 겹쳐 보았다.

이제 그 시절의 아픔은 강물처럼 희석되었다. 기억은 강물 따라 흘러갔고 그 시절의 그림자는 낙수 자국처럼 여기 남았다.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한 채 주룩주룩 차 창을 흐르는 빗물을 보며 이윽고 깨닫고 말았다. 이 비 그치면 더욱 굳어버릴 땅처럼 우리 기억은 물기 하나 없이 박제되고 말 것을...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