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차별   

2024. 12.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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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리뷰하는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볼 때면 이런 소리가 꼭 나옵니다. “이 차의 스티어링 휠(핸들)은 돌리기가 쉽지 않아서 여성 운전자들에겐 힘들 것 같네요.”, “이 차는 작고 귀여운 스타일이라서 여성 오너분들이 꽤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손이 작은 여성 운전자분들은 이 레버를 잡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어떤가요? 적어도 한번쯤 들어본 멘트일텐데요, 혹시 여러분은 그런 말에 동의합니까? 여자는 힘이 약하고 체격이 작으며 우락부락한 SUV가 아니라 작고 귀여우며 컬러풀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편견이 깊이 배인 멘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스운 건 여자 리뷰어들도 이런 멘트를 자주 날린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여자들이 그런 편견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연희동의 모 약국에서 일하는 여성 약사는 체격이 작고 목소리도 여리여리하지만 클래식 포르셰를 타고 굉음을 내며 출퇴근을 합니다. 어느날 저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차를 보며 엄지척을 했습니다. ‘여자가 저런 차를?’이란 의미가 아니라, 그녀의 취향이 부러워서였죠.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모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대표(여성이다)는 다루기가 까다롭고 힘이 들며 승차감도 좋지 않다고 알려진 모 SUV를 몰고 다닙니다. 외모나 말투 어디에서도 그 차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통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근력이 약하고 체격이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제품이나 음식, 문화 상품 등에 대한 ‘취향’까지 남성과 통계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취향과 선호는 성별과 무관합니다.

여성을 약한 존재라고 단정하며 말하는 자동차 리뷰어들은 “이 차의 스티어링휠은 좀 빡빡하네요. 부드러운 스티어링을 선호하시는 분들은 이것을 감안하고 선택하셔야겠습니다.”라고만 말해야 옳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나 여성 운전자분들에게는 불편하겠네요.”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건 키 작은 사람들과 여성 전체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아닐 수 없죠. 차별이 별 건가요? 취향을 키나 성별 등 태생적 속성으로 재단하는 게 바로 차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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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까닭   

2024. 1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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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집 안에서만 은거하며 지낸 노인은 행색이 남루했고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면모를 풍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사는 10살 짜리 철 모르는 꼬마들은 그런 노인을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은 방과후 집으로 가는 길에 노인의 집 앞에서 노인의 이상한 면모에 대해 비웃곤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노인은 밖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못생기고 바보 같은 대머리라고 크게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노인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여느 날처럼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을 앞마당에서 만났습니다. 노인은 "내일 너희들 중 누구나 여기에 와서 지금처럼 무례한 소리를 질러대면 각자에게 1달러씩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이 제안을 들은 아이들은 다음날에 노인의 집 앞을 찾아와 흥에 겨워 욕설을 마구 질러댔습니다. 

노인은 그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꾹 참고 아이들 모두에게 1달러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와서 욕설을 퍼부으면 각자에게 25센트씩을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25센트라는 돈이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한 아이들은 그 다음날에도 노인의 집 앞에 와서 욕지거리를 해댔습니다. 노인은 군말하지 않고 약속대로 25센트를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에게 1센트 줄 테니 내일도 와서 이렇게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1센트라고?"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노인에게 "됐어요!"라고 말하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아이들은 노인의 집앞에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인을 욕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죠.

노인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거워서(?) 하던 행위에 돈으로 보상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을 놀려대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사라지게 만들고 '외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로 대체했습니다. 돈에 의해 유지되던 외적 동기는 노인이 1센트라는 푼돈을 주겠다고 말하자 이내 사라져 버렸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욕하는 행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겁니다. 노인의 이야기는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보상이 줄거나 없어지면 흥미가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말이 안 되는 속담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살펴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미운 아이의 미운 짓에 보상을 하면 그 미운 짓을 할 내적 동기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A를 하면 B를 주겠다"라고 말하는 방식의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A보다는 B에 집중해 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일 잘 하면 돈을 주겠다"라는 보상 방식은 직원들에게 일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엉뚱한 신호를 주는 꼴입니다. 또한 오로지 돈이라는 외적 동기에 의해 일의 즐거움을 확인 받도록 직원들을 조건화합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조성하려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외면한 채 외적 동기를 강화하는 쉽고 빠른 대증요법을 가함으로써 직원들을 내적 동기가 사라진 '외적 동기의 노예'로 만들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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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폭력은 나약함 때문   

2024. 12.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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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라는 유명한 연구를 수행한 학자입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평범한 인간들이 악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이유는 그 사람이 원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상황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죠. 그는 '자신이 나약함이 상대에게 노출될 것을 불안해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이를 간단하게 '노출 불안'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지배자의 위치에 있을 때, 그리고 심지가 박약할수록 자신으로부터 지배 받는 사람들로부터 약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 커집니다. 만약 자신의 나약함이 드러나면 그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나아가 공격까지 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죠. '나약하게 보이면 저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폭동을 일으킬거야' 라는 경직된 사고방식에 휘말립니다. 특히 돌아가는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노출 불안은 극에 달합니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노출 불안의 현상이 가끔씩 나타납니다. 내외부 환경이 조직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때, 구성원들이 리더에게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거나 여러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할 때 노출 불안을 보이는 리더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은 '구성원들에게 현 상황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서는 안 돼. 그렇게 하면 분명히 나를 우습게 볼거야. 강하게 나가야만 해' 라고 결심하고 소위 '강경책'이라는 카드를 구성원들에게 내보입니다.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유화책보다는 강경책이 더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강경책이 문제 해결의 속도와 효과가 크다고 착각하기 때문인데요, 속을 파고 들어가면 리더 자신의 위신과 신뢰감을 보호하려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신과 신뢰감이 한번 무너지면 권위가 약화되고 권력을 잃고 만다는 사고의 악순환이 머리 속에서 끝없이 순환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단절, 협상 불가, 무리한 억제 등 강경 일변도의 정책에 더욱 천착하게 됩니다.

피지배 계층의 반발을 강경 진압하거나 협상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 외에 노출 불안의 심리가 일으키는 악효과는 한번 결정한 사항은 절대 수정하지 않고 밀고 가려는 독단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이 잘못됐다라는 신호가 곳곳에서 들어와도 이미 실행 중인 계획을 수정하거나 중단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조직에 반하는 내부의 적으로 규정짓기도 합니다.

노출 불안이 이런 잘못된 행동과 의사결정을 야기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상황이나 난국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노출 불안 심리를 걷어낸다면 강경책이 아니라 유화책이, 억압보다는 화합이, 일방통보보다는 협상과 설명이 조직(회사, 지자체, 국가 등)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테니까요. 존 F. 케네디는 "정중함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남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인정 받고자 나약함을 감추지는 않는지, 그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지 리더는 매순간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12월 3일, 그 자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여러분은 다 알 겁니다. 그 짓을 저지른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노출 불안이라는 어두운 심리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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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뒷춤에 감춘 은수저   

2024. 12.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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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당신은 사업가입니까>란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책이었는데, 몇 해 전에 소위 '역주행'하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다. 신기한 일이라서 알아보니, 자기계발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 본인의 책에 <당신은 사업가입니까>를 추천도서로 기재했더군요. 

웬만하면 이런 류의 책은 한번 나오고 별 인기를 끌지 못하면, 그리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면 잊혀지기 마련인데,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이 되자 출판사측에서 이 책을 재발행하기로 했답니다. 번역자인 저에게 판매량에 따라 주어지는 원고료는 없으니 아주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신기한 일이긴 합니다.

이 책을 지금 감수 중인데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세계적인 부자인 빌 게이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읽자마자 이걸 여러분께 공유하고 싶더군요. 

보통 빌 게이츠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이고 그가 내세운 비즈니스 모델이 아주 우수했기에 하버드 대학교 중퇴라는 엄청난 리스크를 이겨내 단숨에 컴퓨터 업계의 스타로 등극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의 성공은 상당 부분 '운' 때문이었고, 성공할 만한 주위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소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금수저', '흙수저'란 말은 없습니다.)

그의 실제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빌 게이츠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친지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른 나이(고등학교 때)에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죠. 학교에서 게이츠는 폴 앨런 Paul Allen(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과 함께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는 등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게이츠와 앨런의 해킹 실력 덕에 시스템 관리자는 시스템 버그를 잡아내달라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컴퓨터의 무제한 사용을 허락했죠. 덕분에 게이츠와 앨런은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을 높이 산 고등학교 당국은 게이츠와 앨런에게 일정관리 시스템을 컴퓨터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죠.


졸업 후에 하버드에 입학한 게이츠는 새로운 마이크로컴퓨터에 관한 잡지 기사를 보고 그 제조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그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이미 만들었다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허풍을 믿은 그 회사는 프로그램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며 게이츠를 회사로 초대했고, 그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자마자 게이츠와 앨런은 그제서야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게이츠는 한 학년을 더 다니다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는데요, 사실 곧바로 자퇴하지는 않고, 일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를 위한 사전 대책으로 휴학계를 냈던 겁니다.

 

게이츠의 어머니는 IBM의 전 CEO이자 자신의 친구인 존 오펠을 통해 게이츠를 IBM에 소개했습니다. IBM은 당시 자사 컴퓨터에서 실행될 운영체계를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요, 게이츠는 협상을 통해 자신의 회사(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조건을 얻으며 IBM과 시스템 개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 여러분도 알다시피 게이츠는 컴퓨터 제왕의 자리에 올랐죠.


빌 게이츠, 참 운이 좋았고 집안 환경도 좋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는 아니었죠. 우리는 뛰어난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 영웅 서사를 기대하고 어떤 이는 그런 기대에 편승해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뛰어난 이를 평가하거나 그 사람의 성공원인을 찾으려 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됩니다. 성공한 이는 자신이 물고 태어난 은수저를 뒷춤에 감추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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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초조하다면 머리가 좋다는 뜻?   

2024. 1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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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걱정을 많이 하거나 불안과 초조함에 자주 휩싸이는 사람일수록 똑똑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도 여러분은 후자라고 답할 것 같은데요, 실제로 이 질문에 답한 연구가 있습니다.

해당 연구자는 100명의 참가자들에게 평소 ‘걱정, 염려, 우려 등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측정했는데(예컨대 “나는 항상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다” 등의 설문으로) 불안감이 높은 학생일수록 지능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2012년에 행해진 다른 연구자의 실험에서도 이러한 관계가 존재함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는 80명의 참가자들을 따로따로 실험실에 불러서 컴퓨터 앞에 앉히고는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예술품의 가치를 평가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 과제는 속임수였죠. 예술품을 평가하려던 참가자들은 화면에서 이상한 창들이 갑자기 팝업되고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연구자가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작해 놓은 가짜 상황이었죠. 놀란 참가자들 앞에 연기력이 뛰어난 여자(실험 진행자로 위장한 여배우)가 나타나서 ‘책임자에게 이 상황을 알려라’ 라고 참가자들에게 재촉했습니다. 빨리 컴퓨터 기술자를 불러와 문제를 해결해야지 컴퓨터 안의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책임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연구자가 만들어 놓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어요.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서 간단한 설문지에 응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 책임자의 비서에게 갔더니 중요서류를 복사해 줄 것을 부탁 받는 상황, 컴퓨터 기술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누군가가 종이서류 뭉치를 갑자기 발 밑에 쏟아서 도와줘야 할지 말아야지 할지 등 난처한 상황을 만나도록 한 겁니다. 연구자가 참 짓궂기도 하죠?

 


연구자는 참가자들이 ‘컴퓨터를 빨리 복구한다’라는 원래의 목적에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각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딜레이’하는 정도를 계량적으로 측정했습니다. 각 상황에서 딜레이를 한다는 것(설문에 응하거나, 복사를 도와주거나, 도서관 매니저를 문 앞에서 기다리거나, 종이서류를 줏어주거나)은 그만큼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분석하니, 걱정이나 불안감 수준이 높다고 측정된 학생일수록 컴퓨터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래의 목적에 더 잘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왜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똑똑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상황을 여러 각도로 살피고 점검하는 ‘인지적 민첩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적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과거와 미래의 여러 상황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고려하는데, 이런 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심사숙고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시사회에서 높은 지능과 높은 불안감은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주요요소였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요소가 높았던 선조들의 후손이겠죠.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기 때문에 지능과 불안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면 곤란하겠지만, 어느 정도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과도한 자신감을 갖는 것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진 않을까요? 머리 속에 여러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생각해 낼 줄 아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감이 높은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쳐지지만, 그렇게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이야말로 안전사고를 미리 대비하고 재난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사람들은 보통 불안감과 초조함을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질로 여기지만,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감정'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걱정이 많은가요?


*참고논문
Penney, A. M., Miedema, V. C., & Mazmanian, D. (2015). Intelligence and emotional disorders: Is the worrying and ruminating mind a more intelligent mind?.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74, 90-93.

Ein‐Dor, T., & Tal, O. (2012). Scared saviors: Evidence that people high in attachment anxiety are more effective in alerting others to threat.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2(6), 667-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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