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무엇인가?   

2024. 4.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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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픈 반려동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수의사는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며 보호자에게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고 해요. 하지만 보호자는 병원에 아이를 두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집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답니다. 통원 치료를 하면 되겠구나 싶었겠죠.

 

그런데 이렇게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갔던 보호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돌아오더랍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 상태가 극히 좋지 않아서 (구체적인 증상은 모르겠습니다) 다시 병원에 온 것이죠. 그러면서 수의사를 향해 이런 말을 내뱉더랍니다.

 

“강력하게 입원하라고 이야기했어야죠!”

 

처음에 수의사가 입원하라고 말했던 게 ‘입원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줄 알았던 걸까요? 그 말을 들은 수의사는 황당해 하면서 “아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가 입원시키라고 했잖습니까!”라고 항변했지만, 그 보호자는 “그래도 강하게 주장했어야죠!”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좀 황당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를 떠올렸습니다. ‘자기 선택이나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상태가 바로 어른’이라는.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결정해 놓고 병원으로 돌아와 수의사를 강하게 힐란하다니! 까불다가 지 혼자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 아이가 부모를 향해 “아빠(엄마) 때문이야!”하며 엉엉 우는 경우가 뭐가 다른가 싶더라고요.

 

물론 정확한 배경을 모르기에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긴 합니다. 수의사가 병원 매출을 늘리려고 안 해도 되는 입원을 권유하는 것 같아서 집에 데리고 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아이가 병원 케이지에 갇혀 있는 게 안쓰러워서 집에서 편안하게 간호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자기 결정이 결과적으로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아이의 ‘보호자’라면서요?

 

처음에 수의사가 강력하게 입원을 권유했으면 “돈 벌려고 별짓 다한다.”라고 겉으로든 속으로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상황이 잘못 흘러가면 언제든지 ‘너 때문이야’라고 남탓을 하면 되니까, 참 편리하게 사는 삶인 것 같네요.

 

생물학적으로 어른이 된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내가 공부 안 할 때 나를 때려서라도 공부시키지, 뭐 했냐!”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종종 접하는데, 본인이 어려서 ‘공부 안 하기로 결정’해놓고 이제와 부모를 탓하다니요. 그때 부모가 정말로 때려서라도 공부시켰으면 지금 형편이 나아졌을까요? 늘 남탓을 시전하니 지금 그런 상태에 머무는 것이죠. 나이 먹었다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닙니다.

 

추신: 오늘 우리집 고양이 ‘연두’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습니다. 평평한 머리에 물건 올려놓기가 특기였던 연두. 구내염, 췌장염, 당뇨, 디스크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13년을 잘 버텨냈습니다. 살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죠. 고통없는 곳에서 연두가 뛰어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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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하셨나요?   

2024. 4.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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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일기 시즌 2를 시작한 지 이제 갓 1개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구독자 여러분의 니즈에 부합하는 컨텐츠를 생성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하루를 시작하면서 모닝 커피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 읽힌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방금 ‘커피’라는 단어를 언급했는데, 혹시 지금 이 순간 커피를 몹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모닝 커피에 ‘중독’돼 있습니다. 아침에 한 잔 마시고 오후에 한 잔 마시는 루틴을 오랫동안 계속해 오고 있죠. 저녁 때는 수면에 방해가 되어 웬만하면 마시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나면 커피 생각이 간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하루에 커피 한 잔은 꼭 마실 텐데, 커피의 이점, 아니 카페인의 이점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피로를 잊게 해주고,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주며,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죠. 이는 수많은 연구 결과로 증명된 바이니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그런데 모든 게 그렇듯이 좋은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니까요. 커피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점은 바로 커피의 이점 때문에 나옵니다. 커피를 마시면 집중력이 좋아지는데, 이때문에 창의력은 손해를 봐야 하거든요.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집중한다고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쏙쏙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약간 멍한 상태로 있거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이를 닦거나, 별 생각 없이 풍경을 바라보거나 할 때 톡톡 나옵니다. 소위 ‘마음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때(mind wandering)’ 창의력이 높아지죠. 이것 또한 심리 연구 결과로 증명된 바입니다. 

 

그런데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하나의 작업에 집중하도록 하는 기적의 ‘물약’이라서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게 하지는 못합니다. 마음이 방황하면서 서로 관련이 없는 것끼리 연결시켜야 아이디어가 ‘창발’되는데, 카페인은 그걸 못하게 하고 지금 눈 앞에 놓인 작업에 몰두하도록 만듭니다. 그렇기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소위 ‘브레인스토밍’은 인간의 생리와 심리에 위배되는 행동이죠.

 

커피가 도움이 될 때는 좋은 아이디어가 제시된 다음에 그걸 어떻게 현실화시킬지를 논의할 때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디어 현실화에 집중하도록 커피가 좋은 연료가 되어 주죠. 커피가 몸에 에너지를 주니까 약간은 무리를 하면서까지 ‘how to’에 파고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류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을 바란다면 회사는 직원들에게 질좋은 커피를 무한 제공해야 하겠죠. 직원 만족도를 높이는 데 ‘좋은 커피 제공’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으니 더욱 그래야 합니다. 어쨌든….

 

자, 어쨌든 커피 한 잔 해야겠습니다. 아이디어고 뭐고, 앞에 놓인 일이 저를 쳐다 보고 있거든요.

 

*참고논문

Baird, B., Smallwood, J., Mrazek, M. D., Kam, J. W., Franklin, M. S., & Schooler, J. W. (2012). Inspired by distraction: Mind wandering facilitates creative incubation. Psychological science, 23(10), 11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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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리더십의 의미를 알려주는 영화 3편   

2024. 4.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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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월의 마지막 주말이 되었습니다. 2024년의 1분기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시간 참 빠르네요. 나이 들어갈수록 더 빨라지는 걸 절감하고 있자니, 일부러라도 여유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로, 영화를 보며 머리를 식히고 동시에 리더십의 의미를 의외로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 3편을 소개합니다. 주말에 한 편씩 독파해 보세요. 그리고 각 영화의 주인공이 전하는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한두 개씩 정리보면 어떨까요?

 

 

드 대 페라리

르망 24 레이스에 출전하는 포드 레이싱 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팀을 이끄는 맷 데이먼과 포드 자동차의 CEO는 ‘성과’를 각기 다른 의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성과를 어떻게 극대화하려는지, 그들이 그 과정에서 어떤 리더십(좋은 측면이든, 나쁜 측면이든)을 발휘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을 겁니다.

 

 

 

 

신 고질라

 

예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일본 영화. 괴수의 출현으로 우왕좌왕하는 정부 고위 관리들의 모습을 보면 못난 리더들의 전형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전반부 만큼은 리더십의 ‘반()’ 교본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두세 번 볼 가치가 있습니다.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여왕의 최측근인 두 여인의 대립을 다룬 영화. 리더가 무력해질 때 어떤 암투가 벌어질지, 그리고 그 암투가 어떤 해악을 가져올지 가늠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무력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구성원들끼리 다툼이 빈번하고 반목이 팽배해지는 법이죠. 영화 자체로도 완성도 있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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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에서 '뇌'가 없는 제품을 받아본 적 있나요?   

2024.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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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대부분의 스마트폰에는 유선 이어폰을 꽂을 단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된 지 꽤 오래 됐죠. 아이폰이 스타트를 끊더니 갤럭시가 덩달아 동참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별도의 장비를 구비하거나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해야 합니다. 애플이 에어팟을 판매하려고 이어폰 단자를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죠(방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은 뻥에 가깝습니다).

 

허나 블루투스 이어폰의 가격이 좀 비쌉니까? 괜찮은 음질을 즐기려면 적어도 10만원 가량은 투자해야 합니다. 음질이 동 가격의 유선 이어폰에 비하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게다가 1년 넘게 사용하면 내장 배터리가 다 되어 무용지물이 되거나, 걷다가 떨어뜨려 하수구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내구성도 약하고요. 오죽하면 당근마켓 등에 ‘한 쪽만 팝니다’ 혹은 ‘한 쪽만 삽니다’란 글이 자주 올라오겠습니까?

 

이런 단점 때문에 유선 이어폰을 찾거나 유선 이어폰을 착용하면 ‘힙’해 보인다고 느끼는 사용자가 많기에 예전처럼 스마트폰에 유선 이어폰을 연결하려는 니즈가 존재합니다. 그것도 제법 상당수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니즈를 파고들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지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스마트폰과 유선 이어폰을 연결해주는 ‘어댑터’를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구매했는데, 꽂아서 연결해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사용할 수 없는 기기가 연결되었습니다’란 경고문만 나온다고 말이에요. “얼마짜리인데요?”라고 물으니 3개에 2천원을 주고 샀다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1개에 700원도 안 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소리가 안 나는 게 맞아요. 날 리가 없죠.”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의아해 하더군요. USB-C단자쪽을 스마트폰에 꽂고, 3.5밀리 단자에 유선 이어폰을 꽂으면 소리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혹시나 여러분 중에 모르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짧게 설명 드립니다.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재생하면 ‘디지털 데이터’가 이어폰 쪽으로 스트리밍되는데, 그 데이터는 0과 1로 된 2진수 값이라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로 전환해줘야 들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인이 구매했다는 어댑터 안에는 ‘디지털 투 아날로그 컨버터’라는 장치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약자로 DAC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DAC만 있으면 되냐고요? 아닙니다. DAC에서 나오는 아날로그 신호는 미약하기 때문에 충분한 크기의 음량으로 증폭시켜야 합니다. ‘앰플리파이어(앰프)’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것 역시 어댑터 내에 장착돼 있어야 하죠. 요약하면, DAC과 앰프가 필히 존재해야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700원 짜리 어댑터에 DAC와 앰프가 들어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량생산으로 DAC와 앰프 가격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적어도 몇 천원은 돼야 이 두 부품을 넣을 수 있고, 제법 괜찮은 음질을 뽑아내려면 만 원은 넘어야 합니다. 

 

 

저는 지인에게 “판매자에게 속으셨네요.”라고 말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제대로 된’ 어댑터(실은 어댑터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동글형 DAC/Amp라고 불러야 하죠.)를 드렸습니다. “이거 제가 가지고 있는 건데, 그냥 이거 가지세요. 잘 사용 안 해서요. 비싼 건 아닙니다. 2만원밖에 안 해요.”라며. 그리고 그가 산 ‘하나의 700원 짜리’ 어댑터를 대신 받았습니다. “이거 제가 한번 뜯어볼게요.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2천원에 2만원 짜리를 득템하는 꼴이니 지인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음악을 들어보고는 “정말 소리 좋다!”라고 감탄까지 했으니까요.

 

그날 밤에 저는 바로 문제의 어댑터를 분해했습니다. 본드로 떡칠을 해놓기도 했고 비싼 놈도 아니었기에 프라이어(속칭 뺀찌)로 잡아뜯듯 해체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속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조그만 초록색 기판에 USB-C단자와 이어폰 단자만 납땜이 돼 있을 뿐, DAC와 앰프에 해당하는 부품은 찾아볼 수 없었죠. 팔다리만 있고 ‘뇌’는 없는 꼴이었습니다. 이러니 2천원에 3개나 주지! (위의 사진을 보세요.)

 

소리가 날 리 없는 엉터리 제품을 판매한 중국 어디메의 판매자를 욕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걔네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구나!’ 2천원에 3개라는 말에 혹할 구매자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최소 10만 명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매출액은 2억원.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생각해 보자고요. 과연 몇 퍼센트의 구매자가 반품을 할까요? 2만원도 아니고 2천원 밖에 안 하는 제품이니 반품하는 게 귀찮지 않을까요? 어떻게, 어디에다 반품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알더라도 성가셔서 ‘에이, 그냥 2천원 버렸다 생각하지 뭐.’라며 포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구매자가 80퍼센트만 되더라도 엉터리 제품을 판매한 업자는 1.6억원의 매출을 확보합니다. 제조원가, 운송료 등 각종 비용을 제한다 해도 몇 천 만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회사 문을 닫아버리거나 간판을 바꿔 달면 되죠. ‘뇌’ 없는 제품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어서 버는 돈이니 정말 ‘개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엄청나게 싼 물건은 구매자에게 이익은커녕 오히려 해가 됩니다. 판매자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 있죠. 물건에는 적정가격이 있음을 어느 정도 유념하며 구매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끄적여 봤습니다. 무지하게 싼 제품은 의심하고 볼 일입니다.

 

듣자하니 요즘 ‘테무’가 사람들에게 입방아에 자주 오르던데, 전동공구 세트를 주문한 누군가에게 공구 세트 ‘사진’ 7장이 배송됐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소비자를 우롱한 판매자가 전적으로 잘못한 일이지만, 7천원에 전동공구 세트를 구매할 수 있다고 ‘기뻐했던’ 구매자에게도 2% 가량의 미스테이크는 있지 않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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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물고기'에도 좋은 먹이를 줘야 합니다   

2024. 3.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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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컨설팅 회사를 다닐 때 ‘자기 조직화’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과 어쩌다 같이 프로젝트 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 조직화(self-organized)’란 말은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프로세스를 진행할 줄 알며 문제가 발생하면 본인 책임을 지고 대처하는 역량을 의미합니다. 

 

그는 소위 ‘아이리 리그’의 MBA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객관적인 학력으로만 보면 저보다 훨씬 앞선 자였기에 그랬는지, 그의 연봉은 저보다 1.5배 가량 많았습니다. 연봉을 비밀로 하는 게 컨설팅 사 내부의 ‘훈령’인데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 친구가 파트너(임원)와 맺은 연봉 계약서를 제가 봤으니까요. 몰래 훔쳐 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뭔가를 물으러 갔는데, 다들 보라는 듯이 노트북 PC 위에 떡~하니 올려놨기 때문이었죠.

 

저는 밸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왜 내가 나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을 ‘교육’까지 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리 MBA 출신이라지만 자기 조직화 역량은커녕 필드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몰랐고 고객사의 비즈니스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에 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어려웠던 프로젝트가 그 사람으로 인해 더 힘들었답니다.

 

어이없게도 그는 고객과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저에게(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도) “그게 뭔가요?”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급기야 클라이언트는 나를 불러내 이렇게 따졌다. “그 사람, 컨설턴트 경력 몇 년이나 됩니까? 왜 명함에 나온 직급이 유 선생님보다 높은 거죠?”라고.

 

 

수개월 간 그 사람과 같이 일하느라(아니 그를 가르치느라) 지친 저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은 제가 다 하는데, 연봉은 그 자보다 덜 받으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더욱이 파트너를 찾아가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가 그로부터 ‘넌 학력이 못하잖아’라는 뉘앙스의 말을 듣고나서는 ‘이놈의 회사, 떼려치고 만다!’란 결심이 강해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MBA 출신을 데리고 오려면 그 정도 연봉을 줘야 했어.”라고. 이렇게 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저는 2~3개월 후에 다른 컨설팅 회사로 옮겼습니다. 응당 받아야 할 연봉을 약속 받으면서.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할 때 많은 경영자들이 기존 직원을 홀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게 원칙이라고 되는 것처럼 거의 관행이 되었죠. 영입된 인재에게 약속한 연봉을 기존 직원들에게까지 적용하면 인건비가 크게 향상될 테니 어쩔 수 없이 ‘쉬쉬’하는 건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존 직원들은 바보가 아니죠. 저처럼 연봉 계약서를 우연히 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어나와서 “이번에 입사한 A는 연봉을 떠블로 받는다더라!”라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죠.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 이렇게 새로 영입된 인재의 연봉이 기존 직원의 연봉보다 높을 때 연봉 인상이 되지 않는 기존 직원은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떠나는 직원들 중 회사 성과에 크게 기여하는 우수인재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우수인재로서 자신의 기여를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으로 회사에 ‘이용 당했다’는 분노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죠. 연봉을 ‘현실화’해 주지 않을 때 그 분노는 회사 이탈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우수인재였다라는 자랑처럼 들릴 수 있겠네요. 연봉 높은 사람이 입사한 후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로 결심을 했으니까요. 맞습니다. 저는 우수인재였어요. 컨설팅 사에 다니면서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론을 만들어가면서 컨설팅을 했으니 ‘나는 우수인재였다’란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새로운 인재 영입은 비즈니스에 중요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기존 직원들 중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우수인재를 잘 다독이고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한 활동입니다. 회사의 ‘어법’을 알고 노하우를 축적한 그들의 가치가 높은 연봉으로 모시고 온 영입인사에 비해 결코 낮지 않으니까요. 잡은 물고기에게는 계속 ‘좋은 먹이’를 주는 것이 인사의 기본입니다. (끝)

 

 

*참고논문

Visier Insights™ Report: New Facts About Pay & Compensation

https://www.visier.com/lp/visier-insights-report-compen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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