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災)의 원인은 '입틀막'이다   

2024. 9.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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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2011년 3월에 일본 동쪽 해안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막연한 공포에 떨던 기억이 납니다. 원전 폭발로 인해 누출된 방사능 물질이 공기와 조류를 타고 우리나라로 넘어오면 끽 소리도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피폭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러 매체를 통해 쏟아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러하듯,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사전에 경고한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이시바시 카츠히코라는 고배 대학교 지질학 교수였죠. 그는 사고 발생 5년 전인 2006년, 조만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거라고 말하면서 후쿠시마 지역에 원전 건설을 허가한 정부를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그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내진성능 기준을 검토하는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자였지만 대부분이 도쿄 전력의 고문을 맡고 있는 위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습니다. 학자의 비판을 과학적 근거로 맞대응했다면 뭐라 할 것 없지만, 위원들은 카츠히코 교수가 위대하신 도쿄대 출신이 아니라며 “자격도 없는 사람이 근거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참, 어이가 없죠. 이것이 “도쿄대가 망해야 일본이 산다”라고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말하는 단적이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 게 좋다”라는 문화, 다시 말해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화합을 도모하는 게 낫다, 주변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화 때문에 그의 양심적 경고는 철저히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경고를 묵살했으니 그가 제시한 안전조치 역시 무시했겠지요. 

물론 2000년에 도쿄 전력은 자체 조사 보고서를 통해 쓰나미의 발생 가능성, 쓰나미의 위험성을 언급하긴 했어요.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은 보고서로만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애써 대비했다가 쓰나미가 발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괜히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고 비난 받기 딱 좋지 않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성원의 의견을 간섭이나 방해로 치부했다는 데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참사 후의 복구비용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인 560억원을 들여서 방파제 시설을 강화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습니다.

작금의 의료대란이 벌어지기 전,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여 고언했을 테죠. 최소한의 '지적능력'이 있다면 한 사람쯤은 그랬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은 의료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철저히 묵살됐을 테고, 그는 지금 다른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의료대란은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시나리오로 대비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역시나 인재(人災)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인재는 '입틀막'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덧붙이는글)
'응급실 뺑뺑이'가 조금은 저와 먼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에 지인이 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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