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때 CEO 혼자만 떠듭니까?   

2011. 3. 4. 09:00
반응형



예전에 '집단사고(Group Think)'의 위험에 대해서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 집단사고란 집단지성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반대 의견이나 건설적인 비판 없이 집단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만장일치라서 좋아보일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뭔가 찜찜함이 오래 남는 회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집단사고의 결과물이라는 뜻입니다.

스키복 제조업체인 '스포츠 오버마이어'는 구매를 결정하는 임원회의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겨울 시장의 예측을 한쪽으로 몰고가는 집단사고의 현상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불행히도 여기서 나온 예측은 실제와 매우 달라서 회사가 곤경에 처하기도 했죠. 그래서 이 회사는 한 가지 실험을 계획했습니다. 기존의 회의 방식을 버리고, 각 임원들에게 각자 혼자서 예측치를 산정해보라고 한 것이죠. 그랬더니 각 개인의 예측치를 평균한 값이 회의를 통해 하나로 결정된 값보다 실제에 더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이 항상 옳지는 않겠지만 집단사고가 만연한 조직이라면 차라리 회의를 하지 않고 각자 생각하게 해서 취합하는 방법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집단사고는 카리스마가 있고 재능이 뛰어난 리더가 존재할 때 흔히 발생합니다. 리더가 의견을 내면 그사람의 의견이 틀릴 리가 없다고 믿거나 감히 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용기를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쓰러져가는 크라이슬러를 살린 영웅으로 추앙 받을 만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집단사고라는 폐해를 조직에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한 아이아코카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자신을 반대할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는 항상 옳았습니다'. 그는 크라이슬러를 수렁에서 건져냈지만 또 다른 수렁으로 크라이슬러를 밀어버리는 오류를 범했죠.

이런 집단사고의 오류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더 스스로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에 열렬한 지지를 보낼 때 오히려 위험을 감지할 줄 알아야 하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은 집단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특별부서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그 부서의 역할은 처칠에게 최악의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었죠. 다른 사람들이 처칠의 입맛에 맞는 '걸러진' 뉴스를 전달함으로써 무사안일한 분위기를 형성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처칠은 최악의 뉴스를 들은 후에야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집단사고를 깨기 위해서 일부러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를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 은행으로 부임한 신임 CEO는 첫 회의를 주관하는 자리에서 이상한 면을 알아차렸습니다. 자신이 CEO로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다들 자신만 쳐다보고 아무런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죠. 그도 그럴 것이 전임 CEO가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독재적인 경영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몇 주가 지나고 회의를 다시 주관했는데, 좋은 자문을 받기 위해 초대했다는 금융 전문 컨설턴트 한 명을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15분 쯤 지난 시점에 그 컨설턴트는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방금 한 말은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다."  CEO를 향해 한 말이죠. CEO는 그에게 고맙다면서 숙고하겠노라고 답했습니다. 컨설턴트는 그후 매 15분 간격으로 손을 들고서는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마다 CEO는 컨설턴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죠.

사실 그 컨설턴트는 금융의 '금'자도 모르는, CEO의 이웃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장례식에나 갈 복장으로 회의에 참석해서 15분마다 나에게 바보 같다고 말하면 근사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CEO의 요청에 응했던 겁니다. 이 '악마의 대변인' 아이디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면 CEO의 입만 쳐다보면 사람이 악마의 대변인에게 자극을 받아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며 회의가 건설적인 비판의 장이 됐습니다.

물론 반대를 위한 반대는 집단사고 만큼이나 해롭습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 없이 모두가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분위기를 깨고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반대자를 두는 방법을 채택할 필요도 있습니다. 무사안일주의를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또한 직원들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살리려면 반대자를 대우할 필요도 있지요.

HP(휴렛 팩커드)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팩커드는 자신을 반대한 사람에게 상까지 수여했습니다. 팩커드는 연구소를 방문해서 모니터를 개발 중이던 젊은 엔지니어에게 개발을 포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엔지니어는 이에 불응하고 휴가를 냈습니다. 휴가를 낸 목적은 쉬기 위한 게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를 돌아다니면서 잠재고객들에게 모니터를 보여주고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습니다. 고객들은 그가 보여준 모니터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죠. 그는 연구를 강행하고 상사를 설득해 결국 모니터를 생산해냈습니다. 그 모니터는 3,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을 거뒀죠. 후에 팩커드는 그 엔지니어에게 "탁월한 경멸과 도전"이었다면서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집단사고가 만연하느냐 아니냐는 조직의 리더가 크게 좌우합니다. 회의 때 리더 혼자 떠들고 다들 고개만 숙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척한다면, 여러분은 모두 집단사고라는 무언극에서 열연(?) 중인 배우들입니다. 건전한 갈등이 무언의 만장일치보다 항상 낫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Mind Set', '이기는 결정' )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직원들 군기 잡기, 왜 하십니까?   

2011. 3. 3. 09:00
반응형



기업을 둘러싼 산업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동시에 회사의 성과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위기의식은 조직 전체에 빠르게 퍼집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난국을 타개해 나갈 묘책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면 좋으련만, 대개의 위기의식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몰고갑니다.

'허리띠 졸라매자',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라는 구호와 함께 비용 절감 방안이 위기를 극복할 방책으로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이면지를 재활용하라는 '부드러운' 지침부터 시작해서 출장비 지출 등에 통제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예정됐던 직원 교육은 취소되고 본사와 공장을 오갈 때 사용하던 공용 자동차 사용도 대중교통 이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각종 비용 절감 아이디어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사실 매우 진부하고 따분하죠.



하지만 위기가 좀더 심각해지거나 불확실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으면, 비용 절감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위 '군기 잡기' 방안들이 삽시간에 조직 전체를 장악해 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전 직원이 앞으로 밤 9시까지 이유를 막론하고 연장근무에 들어간다", "공장에서 딴청 피우는 근로자들이 없는지 매 시간 순찰을 돌겠다", "근무시간에 사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면 즉각 시말서를 쓰게 하겠다" , "드레스 코드를 비즈니스 캐주얼에서 정장으로 통일한다" 등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군기 잡기 방안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한눈 팔지 못하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직원들이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하게 될 테니 성과가 오르지 않겠냐는 논리가 군기 잡기 방안들에 깔려 있습니다. 비용 절감책은 조직문화 측면에서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비용 효율성을 제고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기 잡기 방안들은 애써 구축한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빠르게 파괴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창의력을 말살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싶다면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재검토하는 총력적인 변화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 하던 것마져 나쁘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용기를 가지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획기적인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외쳐도 '되는' 이유보다는 '안 되는' 이유만이 득세를 합니다. 찬성보다는 반대가 더 쉽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식의 '정체' 속에서는 근본적인 위기 타개책보다는 직원들에게 눈을 부라리는 방법이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군기 잡기를 내세운다는 것은 위기를 타개할 아무런 대책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군기 잡기 경영'이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런 방법이 과거에 효과적이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업력이 제법 오래되면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들을 잘 넘어왔을 겁니다. 위기를 넘길 수 이유들은 아마도 다양했겠죠. 경쟁사에 대항할 제품을 발빠르게 출시했다든지, 거시경제가 우호적으로 변화했다든지, 정부가 산업을 살리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발동했다든지 등 그때마다 여러 가지였을 겁니다. 아니면 시간이 흘러서 별다른 이유 없이 위기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기 잡기 경영이 위기를 타개해 나갈 때마다 몇 번 실행된 적이 있다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들은 생각이 잘 안 나고 조직에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방법들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급기야 '직원들의 군기를 잡으면 위기를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변질됩니다. 하늘에서 일식(日蝕)이 벌어질 때 북을 치니 일식이 사라진다고 해서 북을 치는 행위가 태양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군기 잡기 경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원인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군기 잡기 경영이 살아남은 두 번째 이유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조직이 위기에 빠졌다면 그것은 환경과 적합성이 떨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한 조직 전체의 책임입니다. 조직 전체의 책임이 아니라면 유가, 환율, 금리 등 국내외 경제시스템의 책임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의 오류나 부적합성을 따지기보다는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직원들에게 성과 저조의 책임을 묻습니다. 개인들의 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성과주의 문화가 일반화된 탓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 때 잘못 뿌리를 내린 군대식 문화가 더해져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직접적으로 "너희들 책임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조건 밤 9시까지 근무하라"는 말 속에는 개인들의 나태함이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임을 직원들의 무의식 속에 강하게 심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모 교과서에 IMF 환란 위기가 닥친 이유가 국민들의 과소비 풍조 때문이었다는 문구가 실려 있다고 해서 한 때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들의 책임으로 얼마나 전가하는지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입니다. 실패한 경제 정책, 투기 자본의 공격에 대한 미온적 방어 등 시스템의 실패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보다 '국민들 잘못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손쉽고 명료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위기가 닥치면 의례껏 시행되는 비용 절감책과 군기 잡기 방안들은 그저 완화책에 불과합니다. 완화책은 그저 위기의 강도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완화책들이 실시되면 그것이 위기 극복책인 것마냥 착각을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위기를 타개하려는 절박감이 사라지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 기대심이 높아집니다. "전 직원들에게 연장 근무를 의무적으로 시켜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면 지구온난화 현상이 금세 없어지리라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용 절감책과 군기 잡기 방안들은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는, 일종의 자기최면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무것도 진화시키지 못하죠. 급기야 레베카 코스타가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라고 지적한 '정체 상태'와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체하는 상태'에 여러분의 조직이 매몰될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래 속에 파묻은 머리를 이제 들어 올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조직 내부에서 옹색하게 머무는 눈을 조직 외부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으로 돌려 놓는 중용의 시각입니다.


(*참고도서 :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2011년 2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11. 3. 2. 09:00
반응형



2011년 2월, 저는 모두 5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 많이 읽지는 못했군요. 긴 설 연휴 동안 책을 많이 읽으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못했고, 2월이 여느 달보다 짧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 봅니다. 하지만 독서량보다 독서의 질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2월의 독서는 매우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짧게나마 서평을 달아보니, 책을 고를 때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의견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취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주면 좋겠구요. ^^


호모루두스: 게임하는 인간

호모 루두스 : '게임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책입니다. 게임이론의 개념과 최신 조류를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죠. 게임이론을 양자역학과 네트워크 이론 등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합니다. 약간 어렵지만 게임이론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추천합니다.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모든 데이터를 부정하라

이기는 결정의 제 1원칙 :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의사결정의 상식들을 뒤집어 버리는,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흥미를 당기는 책입니다.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오랫동안 논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숙고한다고 해서 좋은 의사결정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폅니다.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기존의 모든 의사결정 상식들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책, 강추합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민주주의를 향한 여러 국가의 투쟁,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민주주의의 과제에 관하여 매우 쉽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 부제에도 적혀있듯이 청소년과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했기에 내용이 평이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속도전쟁

속도전쟁 : 유명한 경영소설 '더 골'의 공저자가 쓴, 또 하나의 경영소설입니다. TOC(제약이론)를 통해 기업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죠. '더 골'의 중량감이 워낙 커서 이 책이 아류작처럼 보이지만, 서로 지향점이 다른 린 생산 방식, 식스 시그마, TOC가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를 가진 경영소설입니다. '더 골'에서 재미를 느꼈다면 이 책도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지금 경계선에서

지금, 경계선에서 : 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명의 몰락을 나타내는 징후를 소개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진화가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에서 근본원인을 찾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매우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자가 제시한 5가지 '슈퍼밈'들이 인간의 문제해결능력을 얼마나 옥죄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비단 문명의 몰락 뿐만 아니라 기업조직의 몰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었습니다. 이 책도 강추합니다.


3월에도 즐거운 독서가 여러분과 저를 기다리고 있겠죠? 이제 드디어 꽃 피는 봄입니다!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생각없이 팀을 설계하지 마세요   

2011. 2. 28. 09:00
반응형



환경과 지식이 복잡해지면서 이제 한 사람의 천재가 문제를 홀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또한 개인이 무언가를 새로 발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죠. 로버트 R. 브리트는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사상가들이 위대한 혁신을 이룰 때의 나이가 이전보다 6세 정도 높아졌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개인이 혼자 일할 때에 그렇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혼자 일하는 것보다 힘을 모아 함께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져도 비슷한 시간 내에 풀어낼 수 있죠.

그러한 증거는 혼자서 까다로운 문제를 풀 때보다 여럿이 그룹을 이룰 때 더 빠르다는 것을 밝혀낸 일리노이 주립대(어바나-샴페인 소재)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76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했는데, 학생들을 각각 2명, 3명, 4명, 5명으로 구성된 여러 그룹들로 나눈 다음에 문제를 냈습니다.



그들이 각 그룹에게 낸 과제는 '문자-숫자 코드 깨기' 문제였습니다. 실험자는 "여기에 있는 10개의 알파벳 하나하나에 각각 0부터 9까지의 숫자들이 매칭되어 있다"라고 말하고는 "EED + ECD + EFG 는 얼마인가?"라는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했죠. 학생들은 이 문제를 맞히기 위해 실험자에게 몇 번이고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학생들에게는 "A+B는 무엇입니까?"라는 식의 질문만 허용되었고, 실험자는 답을 숫자로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숫자에 해당하는 알파벳을 불러주었죠. 학생들은 이런 질문과 답을 통해 알파벳 각각에 매칭되어 있는 숫자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이것이 문자-숫자 코드 깨기 문제의 방식입니다.

연구팀은 5명으로 이뤄진 그룹의 학생들이 평균 6.83회의 질문만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6.83회라는 기록은 문자-숫자 코드 깨기에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5명의 개인들보다 우수한 것이었습니다. 3명 짜리 그룹과 4명 짜리 그룹도 역시 개인들보다 성적이 높았습니다. 그룹의 규모가 3명이든, 4명이든, 5명이든 통계적으로 성적의 차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명으로 이뤄진 그룹의 성적은 2명의 개인이 각각 혼자서 문제를 풀 때의 성적과 통계적으로 동일했습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토대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적어도 3명의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는 해석을 이끌어냈습니다. 간단히 말해 3명이 모여야 문제해결의 임계질량(critical mass)에 도달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이 연구의 시사점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3명으로 이뤄진 그룹에 인원을 추가해봤자 문제해결력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룹의 규모가 3명, 4명, 5명일 때가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5명을 초과해 버리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연구 결과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혹은 이미 증명됐는데 제가 못찾은 것일지도) 제 경험상 그러합니다. 워크샵에서 그룹 토론을 진행할 때가 많은데, 어쩔 수 없이 6명이나 7명 정도씩 조를 짜면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거나 멍하니 앉아있는 '무임승차자'를 예외없이 목격하곤 합니다. 한두 명 정도가 꼭 그러합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탓에 결과물도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죠. 4명이나 5명일 때가 그룹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결과물의 품질도 저의 기대를 충족시키곤 합니다.

그룹의 규모가 그보다 더 초과해서 10명 이상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는 무임승차자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됩니다. 바로 '집단사고(Group Think)'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하죠. 집단사고는 집단의 단결력을 유지하고 갈등을 회피하려는 무언의 압력이 형성되어 반대 의견을 묵살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일종의 '조직 질병'인 집단사고는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각종 전략회의(주로 임원들이 참가하는)나 위원회 등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죠(집단사고의 증상은 예전에 올렸던 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베카 코스타는 "신생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혁신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룹의 규모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대기업보다 보잘것없는 예산, 부실한 자원, 더 적은 수의 전문가를 가지고 대기업보다 앞서 나가는 이유는 소그룹의 이점을 백분 활용하기 때문이고, 또한 무임승차자나 집단사고가 판을 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이죠.

여러분이 속한 팀의 인력 규모는 얼마가 적당할까요? 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소한 3명은 되어야 하겠죠. 그렇다면 최대로 가능한 인력의 규모는 얼마일까요? 만약 여러분의 팀이 기획, 연구, 문제해결의 성격을 띤 직무를 수행한다면 5명 정도가 적당할 겁니다. 반면에, '운영(operation)'적인 성격의 직무가 팀의 주업무라면 최대 10명 정도를 하나의 팀으로 묶는 것이 좋습니다. 10명이란 숫자는 로마의 군대와 영국군이 분대 조직을 10명 내외로 설정하여 성공을 거뒀다고 주장하는 앤터니 제이의 의견에 따른 것입니다.

자리를 주기 위한 '위인설관'식 인사관행 때문에 2명 짜리 '미니 팀'을 만들어 내는 회사들이 눈에 띕니다. 반대로, 인력을 많이 투여하면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많은 성과가 나올 거라고 순진하게 기대하는 회사도 가끔 존재합니다. 이렇게 팀 조직을 별다른 기준 없이 내키는 대로 설계하는 일은 집단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회사의 성과를 갉아먹는 고질적인 잠재비용일지 모릅니다.

팀에 속한 인력의 규모가 너무 적지(2명 이하) 않게, 그리고 팀 업무의 성격을 고려하여 너무 많지(11명 이상) 않게 설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야말로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일보다 더 큰 잠재이익의 원천은 아닐까요? 그러니 함부로 팀을 설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논문 : Groups perform better than the best individuals on letters-to-numbers problems: effects of group size.)  (*참고도서 :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병목을 없애지 말고 인정하라   

2011. 2. 25. 09:00
반응형



어제에 이어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처음 보신 분들은 어제 올린 포스팅을 먼저 읽으셔야 이해가 될 겁니다. 어제는 동전 옮기기 게임을 통해 '병목(제약)이 있어야 출하량이 오히려 늘어난다'란 이상한 현상을 실증해 보였습니다.

헌데, 병목을 만들어 두면 출하량은 늘지만 사람들 앞에 놓은 동전들은 많아지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생산 라인을 예로 들면 재공품이 기계들 사이사이에 쌓여간다는 뜻이죠. 재공품이 많아지면 그만큼 돈이 묶이기 때문에 현금유동성의 큰 골치거리가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오늘 소개하겠습니다.



앞에서 했던 게임 규칙에서 두 개만 변경하면 재공품(사람들 앞에 놓은 동전)의 수가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요점은 '병목의 처리 능력에 맞춰 동전을 공급하고, 병목 앞에 충분한 재공품을 투여한다'입니다.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하면, 동전을 최초 공급하는 현빈에게서 주사위를 빼앗은 다음(주사위를 던지지 못하게 한 다음), 병목으로 설정된 태현이가 던진 주사위 수만큼만 동전을 라인에 투입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태현이가 주사위를 던져 4가 나오면, 현빈이는 뒷사람인 동건이에게 동전 4개를 전달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병목인 태현에게는 12개의 동전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도록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동전 4개로 게임을 시작하죠. 태현에게 동전 12개를 주는 이유는 동전이 모자라서 주사위에서 나온 수보다 적게 옮기는(즉, 처리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병목이 놀지 않고 최대한 가동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죠. 게임의 규칙을 이렇게 바꾸면 라인 상의 재공품은 줄어드는 효과가 금방 발생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시죠(잘 안 보이면 클릭!).



처음에 28개의 동전으로 게임을 시작했는데,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재공품의 수가 하나 줄어 들었습니다. 게다가 출하량은 라인을 평준화시켰을 때보다 높습니다. 병목의 처리 능력에 맞게 동전의 흐름을 조절하니 병목을 두었을 때만큼의 출하량을 나타내고 또한 재공품이 크게 사라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발생한 겁니다. 이 또한 신기한 현상입니다. 무조건 원재료를 투입하는 것보다 라인에서 병목을 일으키는 기계(혹은 사람)의 처리능력에 맞도록 생산을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죠. 이는 비단 생산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하나의 프로세스 상에서 함께 일할 때에도 유념해야 할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병목의 처리능력을 조금 높이면 출하량이 더 늘지 않을까, 라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병목인 태현이에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주사위를 2개 주면 어떨까요? 출하량이 늘어날까요? 이렇게 하면 라인을 평준화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주사위를 모두 1개씩 갖는 것과 모두 2개씩 갖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병목의 처리능력을 높이는 것보다 병목의 변동성을 줄이는 쪽으로 개선하면 앞에서 했던 3개의 게임보다 출하량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병목 역할을 담당하는 태현이는 주사위를 하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1부터 6까지의 변동성을 가지는데, 이것을 4부터 6까지의 변동성으로 줄이면 됩니다. randbetween(1, 6)을 randbetween(4, 6)으로 바꾸면 되죠. 아니면 주사위가 1이나 2가 나오면 무조건 4로 치고, 3이나 4가 나오면 5로 치고, 5나 6이 나오면 6으로 치는 방법을 쓰면 됩니다.

이렇게 게임의 규칙을 한번 더 바꾸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출하량이 90개 이상이 됩니다. 똑같은 기간에 무려 20개 이상 많은 동전을 출하시킨 겁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한 달이 지난 후의 재공품 수(사람들 앞에 놓인 동전의 합)는 29개에 불과합니다. 병목인 태현이가 옮길 수 있는 동전 수의 변동성을 줄이니까 이렇게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의 excel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직접 시뮬레이션해보기 바랍니다.


자,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첫째 라인을 평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보다 일부러 하나의 병목을 설치하는 것(혹은 인정하는 것)이 더 많은 매출을 일으킵니다.

둘째, 병목의 처리능력에 맞게 다른 기계(혹은 사람)의 처리능력을 동기화시키고, 병목에게 충분한 재공품 재고를 갖게 하면, 전체 라인의 재공품 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 병목의 변동성을 개선하면(줄이면),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드럼-버퍼-로프'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제약이론을 재미있는 소설로 풀어 쓴 '더 골'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어제와 오늘, 동전 옮기기 게임을 통해 소개한 제약이론 이야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군요. 글로 읽는 것보다 직접 사람들과 게임을 진행해 보면 금세 이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제약이론이 주로 생산 라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론으로 많이 쓰이지만, 개인의 삶이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직생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적화 혹은 평준화가 답이 아니라, 부족함을 부족함 그대로 인정하는 관점이 더 현명함을 일깨우니 말입니다.

아무쪼록 어제와 오늘 올린 글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제약이론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제 제약이론은 어렵다는 제약(?)에서 벗어나셨나요? ^^

덧글 :
어떤 분이 어제 올린 글을 보고 '왜'가 부족하다고 언급하더군요. 그런 현상(병목을 인정하면 출하량이 느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가 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저도 이유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중력은 왜 존재하는가?'란 의문과 같다고 생각했답니다. ^^

(*참고도서 : '더 골', '속도전쟁')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