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 뭐가 좋을까?   

2011. 2.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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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금연하기, 다이어트하기, 책 읽기, 공부하기 등이 새해 계획표에 오르는 단골메뉴들이다. 나도 지난 연말에 2011년에 달성해야 할 몇 가지 목표를 써보았다. 그 중 하나는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모 사이트에서 비만지수를 입력해보고 과체중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래선 안 되겠단 마음이 들었다. 마침 새해가 됐으니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식사량을 줄이고 주전부리를 멀리했다. 하루에 1시간 정도 꼭 걸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귀재라고 했던가? 금년에 유난히 거센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하루 이틀 걷기를 빼먹기 시작하더니, 식사량을 줄이면 군것질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는 핑계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식사량이 줄기는커녕 많아짐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저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몸무게는 연말보다 오히려 1.5kg이나 늘고 말았으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야심찬 계획은 3일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버릴까? 이 책 ‘당근과 채찍’은 이와 같은 ‘오래된’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책이다. 저자 이언 에어즈는 작심삼일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가 현재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미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탈러의 사과’라는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1년 후에 사과 1개 받을래, 아니면 1년이 지난 바로 다음날에 사과 2개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대부분 후자를 택한다고 한다. 사과를 받기 위해 1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오늘 사과 1개를 받을래, 아니면 내일 사과 2개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하루를 더 기다리면 사과 2개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루라는 기간에 대한 평가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1년 후에 기다려야 하는 하루보다 오늘 기다려야 할 하루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라고 여기는 주류 경제학자의 눈에는 이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인간의 심리가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다.

현재와 가까울수록 하루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작심삼일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다이어트를 하느라 배불리 먹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운동하는 데에 오늘이란 시간을 소요하기가 왠지 아깝다. 계획을 세울 때는 먼 일처럼 느껴져 하루의 가치가 별것 아니게 보이지만 막상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날이 되면 하루의 가치가 크게 느껴져서 “지금은 다른 일이 바쁘니, 내일 하자”라는 합리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고 만다. ‘과도한 가치 폄하 효과’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당장의 보상에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또는 당장의 부담을 연기)하지만, 미래에 다가올 보상(또는 부담)에는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작심삼일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이란 해법을 제시한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가 배를 난파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는 사이렌의 노래가 이끄는 곳으로 배를 몰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한다. 사이렌의 노래도 듣고 배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처럼 계획이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를 ‘결박’하는 해법이야말로 약한 의지력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을 대행하는 ‘스틱K닷컴’이란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이 방법에 열성적이다. 약속 실천 계약은 ‘7kg 감량’과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서 그것을 정해진 기간 내에 달성하지 못하면 사전에 지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돈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계약의 내용을 타인에게 공개함으로써 돛대에 자신을 결박하는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게 약속 실천 계약의 논리다.

저자가 약속 실천 계약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보상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A 치료법을 채택하면 400명이 죽는다’는 말과 ‘A 치료법을 채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분의 1, 모두가 죽을 확률은 3분의 2이다’란 말은 따지고 보면 같은 의미인데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손실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일정 금액을 자신이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는 등의 방법으로 계약을 맺으면 손실회피 경향을 역으로 이용해 약속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약속 실천 계약의 묘미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 당근(이득)보다는 채찍(손실)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 할 테니 말이다. 과연 당근보다 채찍보다 나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약속, 계획, 목표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에게 피부암 예방을 위해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권고한다고 하자. 자외선 차단제의 유익함(당근)을 홍보할 경우와, 피부암의 끔찍함(채찍)을 강조할 경우, 어떨 때에 사람들이 자외선 차단제를 더 많이 사용할까? 답은 당근을 강조할 때다. 왜냐하면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암을 예방하는 활동이므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부암 진단과 같이 개인들에게 부담이 큰 활동을 홍보할 때는 피부암의 끔찍함(채찍)을 강조할 때가 더 효과적이다. 약속이나 계획이 개인들에게 느껴지는 부담감의 크기에 따라 당근과 채찍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석화림 국립공원 관리인들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이 조금씩 빼돌려져 연간 14톤의 석화목이 도벌되고 있습니다”란 표지판을 세워뒀다. 채찍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무단으로 석화목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벌을 권장하는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왜냐하면 표지판은 모든 사람들이 석화목을 훔쳐간다는 것을 알려서 “나도 훔쳐가도 되겠네”란 생각을 자극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지판을 세우고 나서 석화목 도벌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석화목을 훔치는 일을 그다지 위험 부담이 크지 않은 일로 느끼게 함으로써 채찍이 먹히지 않게 만든 셈이다. 정책이나 제도를 설계할 때 당근과 채찍의 효과를 잘 따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을 이행하는 것보다 계약 종료 후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체중을 줄이겠다는 약속 실천 계약을 맺으면 대다수가 성공을 거두지만, 계약이 끝나고 난 후에 다시 원래의 몸무게로 회귀하는 요요현상을 자주 목격된다. 이런 실패는 목표를 과도하게 잡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도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동안 억눌렀던 욕구를 보상 받기 위해서 “이제 즐겨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를 예방하려면 현실적으로 목표를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목표를 잘게 쪼갬으로써 목표에 달성하기까지 투입될 노력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할 줄 하는 것도 약속을 유지하는 방법임을 일깨운다. 작심삼일의 오류도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탓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목표 설정은 약속을 이행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그동안 행동경제학을 다루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약속 실천 계약의 유용함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다양한 방법과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계획표에 매번 똑같은 계획이 올라가거나 의지가 박약하여 삼일도 못가 결심이 흐지부지한다면 이 책이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결정적 기회를 줄 것이다.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오늘 올라 온 제 서평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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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길을 택하라   

2011. 2.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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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의 철자가 하나 정도 바뀌어도 여러분은 그것이 어떤 말인지 쉽게 인식합니다. 가령 일부러 어떤 문장 속에 'FOOTBLAL'이라는 잘못된 단어를 써놔도 그것이 'FOOTBALL'이라고 이해할 겁니다. 우리가 단어를 철자 하나하나의 조합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렇다면 'FOOTBALL'의 철자를 뒤죽박죽 섞어서 'LBOFTOAL'이라고 쓰면 어떨까요? 아마 여러분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겁니다. 철자를 재조합하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그것이 FOOTBALL임을 알아 맞히겠죠.



이렇게 심리학자 S.W. 타일러는 실험참여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A그룹에게는 철자 하나만 바꾼 단어들을, B그룹에게는 철자를 마구 뒤섞은 단어들을 여러 개 보여주고 어떤 단어인지 맞히게 했습니다. 당연히 A그룹의 참여자들이 B그룹보다는 빨리 맞혔겠죠.

그런 다음,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들이 푼 단어들이 무엇인지 기억해보라는 질문을 각 그룹의 참여자들에게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A그룹(철자가 하나만 바뀐 단어를 푼)보다 B그룹(철자가 뒤죽박죽인 단어를 푼)의 참여자들이 더 많은 단어들을 기억해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푼 B그룹의 사람들은 뒤죽박죽 섞인 철자를 재조합하여 올바른 단어를 만들기 위해 집중력을 높여야 했겠죠. 타일러는 'LBOFTOAL'로부터 'FOOTBALL'이란 답을 얻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단어가 머리 속에 각인되기 때문에 기억이 오래 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보면 여러 가지 글꼴(폰트)이 있죠. 그 중 어떤 폰트는 멋스럽긴 하지만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에서 사용하기에는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엽서체', '샘물체'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촌스러울지라도 단정한 글꼴을 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겠죠.

하지만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자들은 소위 '어렵고 복잡한' 글꼴이 기억을 오래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글꼴(예 : Comic Sans Italic, Monotype Corsiva, Haettenschweiler 등)로 된 문장을 읽는 데에 더 많이 집중하기 때문에 기억이 오래가는 효과가 나온 겁니다.

이 두 개의 연구 결과는 '쉽게 배운 지식일수록 쉽게 잊혀진다, 어렵게 배운 지식일수록 오래 기억된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쉬운 부분이나 잘하는 부분만을 집중해서 연습하는 것보다 어렵고 못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효과적임을 깨닫게 합니다.

저는 '쉬운 내용으로 책을 써야 책이 잘 팔린다'라는 충고를 자주 듣곤 합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내용을 기피하리라는 이유 때문이겠죠.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범위 내에서 책을 고르는 경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쉬운 책들을 여러 권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실력은 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체될 뿐입니다. 쉬운 책은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목적지를 찾는 데 도움을 주지만 목적지를 스스로 찾는 능력을 키워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죠. 전문성을 향상시키려면 연습에 쏟는 시간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고통이 수반되어야 진정한 학습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진정한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어렵고 험한 길로 가십시오. 쉽고 평탄한 길을 택한 까닭이 '내가 잘 하고 있구나'란 거짓된 확인을 받기 위해서는 아닐까요? 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입니다. 자기기만의 껍질을 깨는 계기를 얻는 설 연휴가 되기를 바랍니다. 


(* S.W. Tyler의 철자 연구 : 여기를 클릭)
(* 프린스턴 대학의 글꼴 연구 : 여기를 클릭)
(* 참고 도서 : '베스트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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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사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   

2011. 1. 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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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 정보를 생산하는 N사의 '전략 TFT'를 대상으로 지난 28일에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총 8시간으로 진행된 이번 워크샵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내의 핵심이슈에 대해 시나리오를 직접 수립하여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워크샵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됐습니다.

- 왜 시나리오 플래닝인가?
- 시나리오 플래닝의 절차와 방법
- 시나리오 플래닝의 간단한 사례 연습
- 시나리오 플래닝 실습 (실제 핵심이슈를 중심으로)
  (1) 핵심이슈 선정
  (2) 의사결정요소 도출
  (3) 변화동인 규명
  (4) 시나리오 수립
  (5) 대응전략 수립
- Wrap-Up

인퓨처컨설팅은 다양한 버전(4시간, 8시간, 16시간, 32시간 등)으로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을 퍼실리테이팅합니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면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리스트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기회를 잡기 바랍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면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전화 : 02-6007-2340
- 이메일 : jsyu@infuture.co.kr   또는  jsyu@infutu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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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정규적이지 않다   

2011. 1.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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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처럼 딱딱하게 냉동된 감자를 벽에 던지면 당연히 여러 가지 크기로 깨지겠죠. 어떤 것은 포도알만 하고 또 어떤 것은 쌀알만 할 겁니다. 냉동 감자 수천 개를 벽에 던진 후에 깨진 감자 조각들을 크기가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나열해보고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어떤 규칙이 발견될까요? 아마 여러분은 중간 정도 크기의 조각이 가장 많고 양쪽으로 갈수록 개수가 줄어드는 종(bell)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머리 속에 그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깨진 감자들은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음을 덴마크의 과학자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냉동감자를 깨뜨리는 실험을 한 결과, 조각의 무게가 반으로 줄 때마다 개수가 6배씩 늘어나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뚝 떨어지는 '둥근 L자' 모양이 됩니다. 무게가 큰 덩어리는 얼마 안 되는데 반해, 무게가 그보다 작은 덩어리들은 '긴 꼬리'를 형성하는 패턴이죠. 이렇게 그래프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뚝 떨어지듯이 급감하는 모양을 갖는 분포를 ‘멱함수(power law) 분포’라고 부릅니다.
 
면적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부터 순서대로 2,400곳을 나열해보면 어떤 분포가 나올까요? 1997년에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것 역시 정규분포가 아니었습니다. 특정 크기를 지닌 도시의 수는 면적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멱함수 분포였기 때문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어떤 도시보다 면적이 절반인 도시는 4곳이 있고, 그보다 2배인 도시의 수는 4분의 1이라는 의미입니다.

정규분포를 따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지진의 경우에도 에너지 방출이 두 배로 되면 빈도가 네 배로 줄어드는 멱함수 패턴을 따릅니다. 산불의 경우에는 피해 면적이 두 배가 되면 그런 산불은 2.48배로 드물어진다고 합니다. 상위고객 20%가 매출의 80%를 기여하고, 20%의 제품이 이익의 80%를 올리는 등 우리가 보통 80대 20법칙으로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멱함수의 일종입니다.

정규분포는 가운데에 솟아오른 종 모양이 특정 사건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평균이 10이고 표준편차가 1이면, 특정 사건이 8에서 12에 해당할 확률이 95%라는 식으로 예측할 수 있죠. 그러나 멱함수 분포는 정규분포와는 달리 ‘전형적’인 값이 없습니다. 물론 멱함수 분포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계산할수는 있지만 그 값은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멱함수 분포를 가지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만약 어떤 현상이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면 예측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규분포는 표본을 이루는 개별 사건들이 독립적이고 서로 동일해야만 성립됩니다. 특정 학교 학생들의 신장(키)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르는 이유는 신장에 관한 한 학생들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학생 한 명이 표분에 추가될 때의 영향력은 다른 학생들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벌이는 네트워크의 일부이고 특정 사건의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월등한 '승자 독식'의 패턴이 나타난다면 정규분포는 실제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어떤 현상을 접할 때 그것이 정규분포를 따르리라 자동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포 그래프를 그려보면 금세 알 텐데 말입니다. 혹시 정규분포를 가정하고 수립한 계획이나 모델이 있다면, 지금 당장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동안 계속된 의사결정의 실패는 정규분포가 아닌 것을 정규분포라고 가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정규적(normal)'이지 않으니까요.


(*참고도서 :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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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좋은 직원이 조직을 망친다?   

2011. 1.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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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능은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노력을 통해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지능이 선천적인지 아니면 후천적인지 여러분의 의견이 갈릴 것  같은데요, 콜롬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캐롤 드웩은 지능에 대해 상반된 2개의 의견이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드웩은 홍콩에 있는 모 대학의 사회과학부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지능에 대한 2가지 의견 중 무엇을 지지하는지 먼저 조사했습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영어시험을 치르게 하고 각자에게 점수를 일러주면서 해당 학생의 영어 실력에 대해 피드백했습니다. 이 대학에서 좋은 영어 점수는 졸업을 위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은 지대했겠죠.


드웩은 영어 점수를 알려주는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보충강의를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보충강의를 신청하는 학생들은 대개 누구일까요? 아마 여러분은 영어 점수가 낮은 학생들이 주로 보충강의를 신청했으리라 예상하겠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학생들만이 보충강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반면 지능이 불변이라고 믿은 학생들은 보충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드웩은 지능이 고정적이라고 믿은 학생들은 똑똑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성공에 필요한 기회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드웩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한 다음에, 실제로 받은 점수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노력했다는 칭찬을 해줬고, 다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해줬습니다. 그런 다음, 어려운 시험을 다시 치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들은 학생들의 성적은 첫번째 시험보다 낮아졌다고 합니다.

지능이 높다, 머리가 좋다란 칭찬은 2가지 이유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끕니다. 첫 번째는 자아도취와 자기기만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다고 칭찬하니 점수가 저하된 초등학생들처럼 말입니다. 드웩이 실시한 후속실험에서도 이런 위험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시험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게 했더니 머리가 좋다고 칭찬 받은 학생 중 40%가 자신의 점수를 실제보다 높여서 썼던 겁니다.

두 번째는 열등하게 보일까봐 보충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던 학생들처럼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을 강화시킨다는 겁니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계속 받기 위해서 조금만 하면 달성할 수 있는 쉬운 과제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자기계발에 도전하지 않는 관성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칭찬이 줄겠죠. 결국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라는 말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지 모릅니다.

드웩의 연구 결과를 기업에 투영시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과에 대해 피드백할 때 결과의 높고 낮음보다는 그 직원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해도 충분한 열정을 보였다면 그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노력이 아니라 운에 의해 목표를 달성했다면 경우에 따라 칭찬보다는 따끔한 질책이 필요하겠죠.

또 하나의 시사점은 많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핵심인재관리의 문제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 제도가 직원들을 지능에 따라 분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인재를 핵심인재로 인정한다는 것은 '지능이 높다'라고 칭찬하는 것과 동일한 부작용을 낳는다고 봅니다. 이 제도가 자기도취와 위험회피 성향을 강화시킴으로써 개인이 가진 경쟁력을 후퇴시키진 않을까요? 예전에 쓴 글에서 핵심인재관리의 허구를 꼬집은 적이 있는데, 핵심인재라고 뽑은 자가 진짜 핵심인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핵심인재관리는 조직의 경쟁력이 개개인에서 나온다는 관점을 가진 제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조직의 경쟁력은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시스템 없이 개인의 능력으로만 오래 유지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개인 중심의 미국식 성과주의가 물밀 듯 밀려오면서 시스템을 버리고 '머리 좋고 학력 좋은' 개인들에게 기업의 운명을 맡기는 오류를 범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머리 좋은 직원이 조직을 망칠지 모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이 조직을 살립니다.


(*여기서 '머리 좋은 직원'이란 머리 좋고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머리 좋고 특별한 직원'이라 인정하는 제도들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오해 마세요. ^^ )

(*참고 논문 : 캐롤 드웩의 논문 http://scan.oxfordjournals.org/content/1/2/75.abstract 
http://www.ncbi.nlm.nih.gov/pubmed/9686450 )
(*참고 도서 :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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